고객들이 롯데아울렛 광교점 리퍼브 전용매장 ‘프라이스홀릭’에서 리퍼브 가전제품을 고르고 있다(위쪽 사진). 올랜드아울렛이 운영하는 하이리퍼브 전문매장 올소 파주점 내부에 각종 생활용품이 진열된 모습. 과거 리퍼브 매장은 고가의 가전제품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소형가전제품과 식품, 생활용품도 취급하고 있다. 각사 제공

제품에서 가장 비싼 것은 포장재라는 말이 있다. 포장을 벗기고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상업적 가치가 확 줄어들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과거 누군가 한번이라도 사용한 제품은 실제 내구도와 상관없이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품 포장이 훼손된 제품의 거래 역시 활성화되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합리적 소비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중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상품 사용에는 문제가 없고 판매된 적도 없지만 외관상 흠만 있는 제품인 ‘리퍼브’ 상품도 인기다. 제품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는 업계의 노력이 먹혀드는 모양새다.

대표 중고거래 중개업체 중고나라는 한때 ‘평화로운 중고나라’라는 오명을 썼다. 네이버 카페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중고나라에 사기가 빈번하자 소비자들이 이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그만큼 중고 거래하면 사기를 떠올린 소비자가 많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최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면서 거래액이 2317억원까지 올랐다. 전년 동기 대비 42%나 증가한 수치다. 상품 등록수도 지난해 183만 건에서 54% 늘어난 281만 건에 달했다.

중고나라는 명성에 비해 모바일 사업에는 뒤늦게 진출했다. 2016년 처음 모바일 앱을 출시해 거래액 881억원을 기록했는데 다음 해에는 2943억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 지난해에는 3421억원, 올해는 4600억원 이상 거래될 것으로 추정된다. 강점은 이어가면서 약점은 극복한 것이 주효했다. 17년 이상 누적된 네이버 카페 빅데이터를 애플리케이션에 연동시켰고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의 사기신고 이력 조회 서비스 사이버캅을 통해 안전한 거래를 보장했다.

지난 4월에는 중고나라 앱에 숍인숍 형태로 신뢰인증 개인장터 ‘평화시장’을 론칭했다. 중고나라가 상품 공급과 배송을 지원하고, 재고 걱정 없이 무자본으로 판매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중고나라는 “합리적인 소비 경향이 강해지고 있어 중고나라에 관한 관심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모바일 중고시장에서는 중고나라가 후발업체다. 2010년에 출시된 번개장터는 꾸준히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중고거래를 할 때 개인정보 노출을 꺼린다는 점에 착안해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고도 흥정·거래할 수 있는 ‘번개톡’ 시스템을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중고거래의 특성을 잘 살려 지역 간 거래를 제공하는 당근마켓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때문에 택배 거래로 인한 사기 위험이나 주소 노출 부담이 적은 편이다.

이처럼 중고거래 업체가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고거래 중 사기·폭력·살인 등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리퍼브 거래는 이런 부담에서 자유롭다.

리퍼브전문 기업인 올랜드아울렛은 2009년부터 전국 각지 매장에서 리퍼브 가전·가구 제품을 판매하며 잔뼈가 굵었다. 올랜드아울렛은 리퍼브 제품에 대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 가전 전문 설치기사로 검수팀을 꾸렸다. 제조업체에서 사들인 반품 제품을 철저히 검수하고 부품에 이상이 있으면 자비로 수리해서 품질에 만전을 기한 다음에야 판매했다.

최근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형태의 리퍼브 전용 매장이 들어서고 있다. 올랜드아울렛이 운영하는 하이리퍼브 전문매장 올소 전경. 올랜드아울렛 제공

올랜드아울렛은 최근 하이 리퍼브샵 ‘올소’를 론칭했다. 소형가전과 식품,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는 리퍼브 전용 매장이다. 올랜드아울렛을 운영해 온 경험이 올수 론칭에 도움이 됐다. 올랜드아울렛 소속 가전 검수팀은 올소에 들어오는 식품의 유통기한까지 꼼꼼히 검토하고 있다. 올랜드아울렛 관계자는 “리퍼브 제품을 앞세워 매년 20% 안팎의 고속성장을 하면서 올소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올랜드 아울렛은 일반 제품과 리퍼브 제품을 함께 팔았지만 올소는 리퍼브 제품 전문 매장으로 꾸렸다. 라면, 즉석밥, 참치 등 식품류를 인터넷 최저가보다 최대 70%까지 저렴하게 판매하고 세제, 완구 등 생활용품도 취급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파주점 매출이 2000만원에 달한다. 올랜드아울렛은 2021년까지 전국에 올소 100호점을 낼 계획이다.

올소는 오픈마켓의 성장에서 혜택을 봤다. 올소는 오픈마켓의 반품 제품을 싼값에 사들여 되파는 시스템이다. 오픈마켓 반품률이 높을수록 제품 공급망이 안정된다는 의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13조7000억원에 달해 처음으로 100조를 넘어섰다. 10월 거래액은 11조 805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3%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온라인 쇼핑몰 반품률은 평균 15% 안팎으로 오프라인보다 비교적 높다고 알려져 있다. 오픈마켓이 성장할수록 올소 제품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커머스 업체 티몬이 매달 24일 운영하는 ‘리퍼데이’ 행사 포스터. 티몬 제공

리퍼브 상품의 인기로 기존 기업도 리퍼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이커머스 업체 티몬은 매달 24일을 ‘리퍼데이’로 정하고 리퍼전문관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은 지난 10월 광명점에 리퍼브 상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 ‘리씽크’의 문을 열었고, 롯데아울렛 광교점도 리퍼브 전문매장 ‘프라이스홀릭’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리퍼브 전용매장 ‘리씽크’를 운영하는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 전경.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제공

음식에는 중고 상품이 없다. 먹다 남긴 것이나 반품된 상품을 되팔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모양새가 좋지 않은 음식을 싼값에 판매하는 것을 ‘푸드 리퍼브’라고 한다.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도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김밥이나, 모양이 일그러진 사과는 헌 것만 못한 취급을 받는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푸드 리퍼브’가 아직 잘 받아들여 지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크나큰 낭비이자 환경문제라고 인식해 푸드 리퍼브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푸드 리퍼브 애플리케이션 ‘라스트오더’도 이 점을 강조했다. 라스트오더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음식 구매를 중개하는 마감세일 플랫폼이다. 라스트오더는 자사 서비스가 버려지는 음식을 구하고, 환경을 구하는 유익한 식문화를 만들어 나간다고 강조한다. 이런 차별점 덕분에 ‘그린 오션’이라 불릴 만큼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롯데마트도 지난 5일부터 일주일간 B급 과일을 판매했다. B급 과일은 일명 못난이 과일로도 불리는데, 당도나 크기에 차이가 없지만 겉에 흠집이 있거나 모양이 다소 불균형한 것들을 말한다. 지구인컴퍼니와 파머스페이스 같은 스타트업은 태풍 때문에 떨어진 낙과나 못생긴 농작물 유통을 돕고 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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