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서 일당 받아 빚은 호떡… “마음 속 추위까지 녹아요”

[삼십분의 일 운동] 함께 땀 흘리는 목회자들

최영섭 인천 마을안교회 목사(왼쪽)와 이영민(서울신대)씨가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광야교회(임명희 목사) 인근 천막에서 노숙인들에게 나눠 줄 호떡을 굽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100길. 노숙인과 쪽방촌 홀몸노인 등이 많은 이 동네는 ‘버텨야 사는 곳’이다. 쪽방이 빼곡하게 들어찬 동네는 지난 6일 올겨울 들어 가장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며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냉기 가득한 골목엔 창문 틈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난로 환풍구가 연신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날 작은 나눔에 온기를 담아 소외된 이웃의 몸과 마음을 데워주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12년째 ‘삼십분의 일 운동’을 펼치는 인천의 목회자들이다(국민일보 2019년 11월 28일자 37면 참조). 점심 배식을 한 시간여 앞둔 오전 10시30분, 광야교회(임명희 목사)가 배식소로 활용하는 천막 옆으로 작은 천막 하나가 더 세워졌다.

“지난달 과수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일당 받았으니 이번 달엔 그 돈으로 섬김을 실천해야죠. 하하.”

최영섭(61) 마을안교회 목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호떡 틀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박병욱(53) 회복의교회 목사가 익숙하게 가스통에 밸브를 연결했다. 한 달에 하루 땀 흘려 노동하고 그 임금으로 노숙인, 쪽방촌 주민, 홀몸 노인, 아파트 경비원 등 이웃 돕는 사역을 수년째 함께해 척하면 척이다. 오늘은 식사하러 온 노숙인들에게 호떡과 어묵을 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호떡 테이블 옆에선 꼬치에 어묵을 끼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박홍길(53) 우리들교회 목사는 “아침 일찍부터 어묵 국물을 만들고 인천에서 부지런히 움직여 제 시간에 올 수 있었다”며 국물 간을 점검했다. 그는 “삼십분의 일 운동에 동역하는 목회자들은 자기나 교회를 드러내지 않고 대가나 성도 수의 부흥을 바라지도 않는다”며 “오직 자성과 개혁, 섬김에만 집중할 뿐”이라고 했다.

이날 현장엔 특별한 참가자도 있었다. 유환영(31 감리교신학대학원) 전도사와 이영민(24 서울신학대)씨다. 예비 목회자인 신학생이 삼십분의 일 운동에 동참하기는 사역 12년 만에 처음이다. 두 사람 모두 기말고사를 코앞에 두고 있었지만, 예비 목회자로서 ‘노동과 섬김’의 본질을 체험하기 위해 잠시 펜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둘렀다.

유 전도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의 섬김 현장은 숱하게 경험했지만, 개교회나 기관의 헌금 후원금이 아닌 목회자들이 직접 번 돈으로 이웃을 돕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여기 오기 전부터 선배 목사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신학생 중에도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삼십분의 일 운동이 그들에게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고, 이 운동을 이끌어온 목회자들이 좋은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배식을 위한 대기열이 길어지자 최 목사가 봉사 참여자들을 둥글게 모으고 손을 모았다. “하나님 우리가 하는 섬김 정말 별것 아닙니다. 하지만 팍팍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마음을 녹이는 데 호떡 한 개, 어묵 한 꼬치가 부족함 없게 하옵소서.”

식사를 마친 노숙인들이 사랑의 호떡 어묵 나눔 봉사현장을 찾아 줄을 선 모습. 송지수 인턴기자

퇴식구에서 예상치 못한 호떡 냄새를 맡은 노숙인들이 반가운 표정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떡을 받아든 김철영(가명 54)씨는 “30년 만에 호떡을 처음 먹어보는 것 같다”며 “목사님, 오늘은 제대로 운수 좋은 날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총신대 85학번인 최 목사와 서울신대 14학번인 이씨는 나란히 앞치마를 입고 연신 호떡을 구워냈다. 섬김을 위해 세대와 교리적 차이를 허물고 노숙인들 앞에 선 29년 차 신학도 선후배 사이에선 이질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세대를 넘어선 협력은 또 다른 기대를 낳고 있다. 삼십분의 일 운동본부가 교파를 초월해 펼치는 한국교회 다음세대 지도자 연합 운동이다.

이를 위해 전국 9개 신학대 학생대표 20여명과 함께 다음 달 종교개혁지 순례를 떠난다. 유 전도사는 “한국교회 미래를 짊어질 이들과 순례길에서 서로 꿈꾸는 목회를 공유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며 웃었다.

소요예산은 7000만원. 모금 완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김병진(53) 하늘꿈교회 목사는 “큰 단체가 돼 대단한 활동을 펼치기보단 작은 옹달샘에 계속 물이 마르지 않고 여러 지역에 샘이 솟아나길 소망한다”며 한국교회의 동참을 당부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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