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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선의에서 비롯한 그릇된 판단”


북·미 대립으로 비핵화 불가능 판단하면 대북 저자세 버리고 최적화 핵 균형 방안 검토 필요
선의가 좋은 결과 이끌지 않아 목표 이룬다는 신념 유지하되 실패한 전략이라면 고쳐야
희망만 가득찬 낙관주의는 목표 달성에 최대 걸림돌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낙관주의의 역설을 얘기한다. 1965~73년까지 베트남 포로 중 최고위 장교였던 제임스 스톡데일 미 해군 대령의 이름에서 따왔다. 대부분은 죽어 나갔지만 그는 혹독한 고문과 독방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경영학자들이 이 사례를 연구했다. 다른 이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에, 부활절이 지나면 추수감사절에,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다시 크리스마스에 석방을 기대했다. 그렇지 않자 이들은 절망했고 살아남지 못했다. 스톡데일은 달랐다. 가족을 만날 것이라는 믿음은 버리지 않았으나 엄혹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할 줄 알았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합리적(또는 냉혹한) 낙관주의가 버틴 힘이었다는 게 학자들의 결론이었다. 희망적 사고로만 가득 찬 건 결국 독이 된다.

여러 생각이 함께 몰려드는 연말이다. 이런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사람들은 나름대로 결산을 하는 모양이다. 희망은 희망대로, 비관은 비관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정리하고 평가하고 다음 해 계획을 세운다. 개인도 그럴진대 하물며 조직이나 나라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방향으로 줄곧 달려온 비핵화 전략은 이젠 정리·평가·보완·개선할 때가 됐다. 임기 중반이란 시기도 물론이거니와 거친 북·미 대립, 북한의 남한 무시, 북·중·러 관계 밀착, 한·일 갈등, 한·미 방위비 분담금 마찰과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 확장 등 한반도에 심대한 영향을 줄 환경적 요소들이 꽤 변했기 때문이다.

비핵화 과정은 2018년 1월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의지를 밝힌 때부터 시작해 미국과 남한과의 정상회담, 9·19 남북합의, 구체적 성과 없는 북·미 협상에 이어 ‘새로운 길’ 천명, 십수 차례 발사체 발사와 2019년 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위협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중재자를 자임한 한국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는 중개인 정도의 역할밖에 못 한 형국이다. 그러니 지금은 희망적 사고에만 매몰돼 있어서는 안 된다. 냉혹한 현실 평가와 더 나은, 더 현실적인, 더 성과를 낼 개선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대북 저자세, 이건 꼭 고쳐야 한다. 더 나은 비핵화 환경 조성을 위해 시종일관 저자세 전략을 채택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효과가 없다. 돌아온 건 ‘삶은 소대가리’ ‘넓은 오지랖’ 같은 막말이다. 비핵화 협상에서 “너희는 빠져”라는 태도가 역력하다. 북한 눈치 보며 F35A 전력화 행사도 비공개로 치른다. 저자세는 전략적 선택인가, 운동권 정치세력의 태생적 굴종인가. 따져 보고 개선해야 한다.

둘째, 연말 북·미 말싸움이 행동으로 나타나면 파국 가능성이 크다. 비핵화 불가능으로 판단한다면 핵 균형력 확보 방안을 찾아야 한다. 비핵화 의지는 갖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핵 공포를 통한 균형, 상호확증파괴(MAD) 능력 확보로 오히려 위기 지수를 낮출 수도 있다. 핵무장을 위한 외교적 기술적 검토를 시작하는 것은 대단히 현실적이고 전략적이며, 더 나은 협상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셋째, 어차피 현실 최강인 미국과의 다양한 공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는 세계 전략 차원이다. 그 전략을 최대한 우리에게 이익이 되도록 활용할 수는 없나. 호르무즈 해협 파견이나 일본과의 관계 개선, 인도·태평양 전략의 제한적 지원 등 서로의 국익과 관련된 옵션들을 주고받음으로써 중장기적 국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진영 논리에 따라, 정권의 지지층 의견에 따라 갈라치기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동조하지 않으면 마치 수구 보수로 모는 정치 전술은 수명을 다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시민 의식은 확실히 진영 논리를 알아채기 시작했다. 한반도 전략도 예외일 수 없다.

1938년 체임벌린 총리와 히틀러 총통이 서명한 영·독의 뮌헨 협정은 때때로 역사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듬해 2차대전 전까지 단 11개월간 겉으로의 평화만 남겼다. 평화 목적의 뮌헨 협정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협정은 협정이고, 대비는 대비다. 이후 히틀러와 영·프의 전력은 극적으로 역전된다. 영국은 대비에 실패했고, 인류의 대전쟁은 터졌다. 신념을 잃지 않는 것과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는 별개다.

윈스턴 처칠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회고록에 뮌헨 협정과 전쟁 발발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유능한 인간들의 선의에서 비롯한 그릇된 판단에 관한 이 슬픈 이야기도 이제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곤경에 빠지게 된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사람은 아무리 동기가 훌륭했다고 하더라도 역사 앞에서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바로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받아들였고 또 무엇을 던져버렸는지 뒤돌아보자.”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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