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사망자 공영 장례가 치러지는 경기도 고양 서울시립승화원에서 15일 비영리 민간단체 ‘나눔과나눔’ 관계자가 고인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태우고 있다. 이날 화장된 김모씨는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해 유택동산에 뿌려졌다. 고양=윤성호 기자

올 서울 ‘무연고 화장’ 370명 전수조사
망자 삶의 궤적엔 지독한 빈곤과 고독
가난한 유족들도 시신 인수·장례 외면


서울에서 혼자 죽은 사람 370명이 올해 화장됐다. 기억해줄 연(緣)이 없어 가루가 된 뒤 서울 하늘 아래 흩뿌려졌다. 죽은 뒤 국가가 ‘연이 없음’을 공식 확인하고 불태운 이들이다. 지난해 숨졌지만 연이 없어 397일을 안치실에서 대기하다 떠난 이도 있다.

무연고 사망은 전국적인 현상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직전 해보다 20% 증가했고, 전문가들은 올해도 비슷한 수치가 나올 것으로 봤다. 국민일보는 이 같은 비정상적 죽음의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지난 1~11월 서울에서 장례가 치러진 370명의 무연고 죽음을 전수조사 했다. 연이 사라진 그들의 생애사(生涯史)를 추적하기 위해 지인과 유족 208명을 접촉했다. 공영장례 지원 단체 ‘나눔과나눔’과 공동으로 통계 작업도 진행했다.

무연고 사망은 빈곤의 늪으로 떨어진 하류 인생의 종착 같았다. 무연고 사망은 독거사(獨居死)나 고독사(孤獨死) 형태가 많아 외로움도 깊지만, 사망자 삶의 궤적에는 그보다 지독한 가난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애는 구조적 빈곤, 고착화된 빈곤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들 중에는 잡일 노역, 배달 등의 일을 하거나 공사판 인부로 막노동을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다 죽은 사람들도 있었고, 빈곤에 순응해 무력하게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올해 장례를 치른 370명 중 40, 50대가 136명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병들어 수년을 고통 받다 배고프게 죽었다. 전쟁 직후인 1960년대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가난을 경험했고, 사회에 나왔을 땐 IMF 외환위기 등 국가적 파동의 여파를 고스란히 겪었던 인생사가 많았다. 부푼 꿈을 안고 목돈을 마련해 장사를 시작했다가 망한 뒤 가족이 해체되고 혼자 술독에 빠져 살다 죽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하층민이 된 뒤에는 한 달에 40만~70만원 되는 기초생활수급비만큼의 삶을 살았다.

폭력 남편을 피해 도망 나와 일평생을 삯바느질하거나 가정부로 일했던 노모(老母)는 올 봄 장례가 치러졌다. 그는 자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모진 세월을 딸뻘 되는 셋방 주인에게 가끔 이야기했다고 한다. 국민일보가 수소문 끝에 접촉한 자녀는 그러나 노모를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모친을 가슴에서 지우고 평생 이를 악물며 살았는데 그 역시 가난했다.

이처럼 가난은 망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가 떨어져나온 가족들도 가난했다. 가난해서 서로 돌보지 못했고, 연락을 끊었다는 유족의 이야기는 시신 수거할 돈조차 없다는 고백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정부가 무연고 장례 처리를 위해 친족을 수소문했는데 거주불명인 경우나 국민일보 취재로 확인된 기초생활수급자 유족이 수십명에 달했다. 결국 모두 가난하다는 참혹한 사실이 무연이라는 비참한 죽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셈이다.

무연고 사망의 급증은 사회의 초고령화, 1인 가구 급증, 가족 붕괴 같은 여러 원인이 상호 작용한 결과로 여겨지고 있다. 정부 대책은 무연고 사망의 일부인 고독사 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군색하고 궁핍한 삶을 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들은 매년 는다. 가난했던 무연고자들이 매년 이전보다 더 많이 죽어나가는데도 가난한 사람 통계는 줄지 않는다. 빈곤의 늪으로 새로 침전되고 있는 인생이 계속 발생한다는 뜻이다. 국민일보는 무연고 사망의 원인을 빈곤의 관점에서 조명하기 위해 15일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슈&탐사팀=전웅빈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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