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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 ‘이미지 퀸’… 신성일의 여성 버전 ‘전지현’

[전찬일 강유정의 한국영화 100년의 얼굴] (24) 전지현(1981∼)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이 시대의 CF 여신’ 정도면 제격일 전지현이 과연 ‘한국영화 100년의 얼굴’ 25인 안에 포함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연기력이나 대표작에서 전도연 김혜수에 전혀 꿀릴 게 없을 문소리마저 최종적으로 여배우 12인 목록에서 제외됐거늘 말이다.

당장 주연 데뷔작 ‘화이트 발렌타인’(감독 양윤호·1999)에서 최근작 ‘암살’(최동훈·2015)까지 출연작부터가, 2년에 한 편꼴로 11편에 불과하다. 1년 후배 손예진이 찍은 20여편의 반밖에 안 된다. 내세울 대표작도 몇 되지 않는다. 100년의 한국영화사를 빛낸 문제작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전문 주간지 ‘씨네21’이 올해 선정·발표한 역대 한국영화 30편 중 마지막 영화인 ‘암살’과, 그녀 생애의 대표작 ‘엽기적인 그녀’(곽재용·2011), 그리고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황산벌’ ‘올드 보이’ ‘실미도’ 등 수·걸작들을 대거 선보이며 우리 영화를 대폭발시켰던 ‘2003년의 발견’으로 내게 각인돼온 ‘4인용 식탁’(이수연) 정도다.

독보적인 여성 스타 배우

필자는 그런데도 전지현을, 한국영화 100년사를 대표하는 여배우 10인 가운데 1인으로 줄곧 평해왔다. 그 단적인 이윤즉슨 이미지·기호로서 스타의 속성 측면에서 비견될 여배우가 없을, ‘절대적 스타 여배우’라는 판단에서였다. 1997년 하이틴 잡지 ‘에꼴’의 표지 모델로 연예계에 투신한 그녀에게 결정적 스타덤을 안겨준 ‘엽기적인 그녀’ 이래 견지해 온 한결같은 평가다. 내게 한국영화사의 단 하나의 스타가 신성일이라면, 21세기의 독보적 여자 스타는 전지현이다. ‘친절한 금자씨’ 이영애나 ‘로코 퀸’ 손예진이 아니라. 동의 여부를 떠나, 그런 이유로 그녀를 ‘신성일의 여성 버전’이라 규정해온 것이다.

이쯤에서 오해하지 말라, 강변하련다. 전지현이 연기력보다는 특유의 스타성으로 인기를 누려온 것은 사실이나, 소위 ‘발연기’를 하거나 연기를 못하는 배우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 이전에 선보인 ‘화이트 발렌타인’과 ‘시월애’(이현승·2000)에서부터 전지현은, 오늘날의 눈으로 봐도 합격점을 받기에 모자람 없는 호연을 펼친다. 멜로 감성을 놓지 않으면서도 코믹·발랄에 무게중심을 싣는 ‘엽기녀 형’과 상대적 ‘멜로 형’ 캐릭터로 무장한 채. ‘화이트 발렌타인’의 정민은 영락없이 ‘엽기적인 그녀’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곽재용·2004·이하 ‘여친소’) 등의 ‘엽기녀’를 예고한다. ‘시월애’의 은주는 ‘데이지’(유위강·2006)에서의 거리 화가 혜영 등으로 이어진다.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도 잡지 못한 ‘화이트 발렌타인’과 ‘시월애’의 실패는 때늦은 기획과 그로 인한 불리한 대진운 탓이었을 공산이 크다. 아는가? ‘화이트 발렌타인’은 1999년 2월 13일 강제규 감독의 ‘쉬리’와, ‘시월애’는 2000년 9월 8일 ‘공동경비구역 JSA’와 같은 날 개봉됐다는 사실을. 애당초 승부가 안 될 판세였다. 국내 관객들은 더욱이 97년에 ‘초록 물고기’ ‘접속’ ‘편지’ 등을, 98년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 ‘약속’ 등을 통해, 코믹성이건 최루성이건 다채로울 대로 다채로운 멜로의 맛을 만끽한 후였다. 그런 마당에 두 영화가 비평적으로든 흥행적으로든 큰 호응을 끌어내기란 ‘미션 임파서블’이었을 것이다.

한국 로맨틱 코미디史 이정표


‘엽기적인 그녀’는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 기획 영화 ‘결혼 이야기’(김의석·1992)를 만든 제작사 신씨네(대표 신철)의 명품 기획의 산물이었다. 곽재용 감독의 감각적 연출이 부응했음은 물론이다. 전지현은 액면 그대로 ‘그녀’의 현현이었다. 엽기적이긴 한데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치명적 매혹의 엽기녀! 전지현-차태현 투톱의 ‘케미’도 인상적이었으나, 전지현 캐릭터와 연기는 전무후무했다. 그저 “상업영화로서 할 바를 다한 기획 상품”쯤으로 치부되기도 했던 그 ‘튀는’ 코믹 멜로드라마를 필자가 나만의 한국영화 100선 안에 포함시킨 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 전지현의 압도적 캐릭터 소화력 때문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테다.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하는 등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2002년 제39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 등의 쾌거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인 그녀’는 전지현에게 축복이자 동시에 굴레였다. ‘엽기녀’로서의 이미지가 하도 강렬해서인지, 데뷔작에 이어 다시 한 번 박신양과 호흡을 맞춘 후속작 ‘4인용 식탁’에서 작심하고 도전한, 예외적이며 탈 엽기녀적인 연기 변신 시도가 대중적으로는 참패로 귀결됐기에 내리는 진단이다. 서울 기준 174만명이라는 전작의 성공을 무색하게 하며, 18만여명밖에 동원하지 못했으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제36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시민케인상(신인감독상), 4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감독상 등에 빛나는 ‘4인용 식탁’은 이른바 저주받은 문제작의 대표적 사례다. 일찌감치 강변했듯, 전지현의 연기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엽기적인 그녀’와 더불어 전지현 전작(全作) 중 최고 연기를 놓고 자웅을 겨룬다고 할까. 개봉 당시 한 일간지에 “영화 내내 한 번도 ‘엽기적인 그녀’ 때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한 연기 변신을 했는가를 방증해준다. 초반의 발성 연기는 흔들렸지만 ‘불안-안정-체념’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흐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포스트 심은하’의 자리를 맡기에 충분하다”는 등의 극찬을 한 것도 그래서였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발간 ‘영화 평론’ 2003년 제15호 ‘한국영화 베스트 10’ 리뷰에서 필자는 상기 극찬을 다음과 같이 이어갔다. “스타란 으레 어떤 역을 연기하건 기존의 이미지가 그 역에 개입, 방해하기 마련이기에 이번 체험은 내게도 진정 흔치 않은 영화체험이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연기자라고 간주한 적이 없던 내가 그녀가 스타를 넘어 진정한 배우로서 거듭났다고까지 생각하는 건 그 때문”이라고.

슬럼프, 그 후 화려한 재기


배우로서 전지현의 재탄생은 그러나 지속되진 않았다. ‘엽기적인 그녀’의 프리퀄 격인 “전지현의, 전지현에 의한, 전지현을 위한” ‘여친소’로 보란 듯 대중성은 회복했으나, 저주에 가까운 온갖 혹평들에 시달려야 했다. 엽기녀 이미지의 ‘재탕’ 정도를 넘어 맹목적으로 소모되긴 했어도 딱히 전지현이 연기를 못해서는 아니었다. 대중·상업영화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내러티브의 개연성·설득력을 거의 전적으로 무시해서였다. 오죽했으면 평론가 김영진이 이렇게 일갈했겠는가. “공짜로 멍하니 거실에 앉아 보는 CF가 아닌 수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에게 이것은 너무 뻔뻔스러운 장삿속이자 모욕이 아닌가”라고.

아니나 다를까, ‘여친소’ 이후 출연한 ‘데이지’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정윤철·2008)는 비평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전자에서는 정우성 이성재와, 후자에서는 황정민과 합을 맞췄건만, 각각 90만여명과 50만여명을 동원했을 뿐이다. 특히 ‘슈퍼맨…’은 ‘말아톤’(2005)의 정윤철 감독 작품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그녀의 책임은 아니었겠으나, 전지현에겐 분명 슬럼프라 할 만했다. 국내에서의 슬럼프를 만회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블러드’(크리스 나혼·2009) ‘설화와 비밀의 부채’(웨인 왕·2011) 등을 통해 해외 진출에 뛰어들었으나, 그 역시 무위에 그쳤다.


그러나 전지현이 누군가. 그녀는 ‘도둑들’(최동훈·2012)에서 예니콜 역으로 더 이상 화려할 수 없으리만치 화려하게 재기한다. 잠파노 역을 맡은 김수현과의 ‘궁합’이 가히 환상적이다. 그 궁합은 ‘해피투게더’(1999) 이후 14년 만의 TV 출연작인 ‘별에서 온 그대’(SBS)로 이어진다. 그녀 특유의 엽기녀 이미지로부터 상당 정도 탈피하는 데에도 성공한다. 뒤이어 ‘베를린’(류승완·2013) ‘암살’로 연속되는 홈런들을 날린다. 바야흐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블러드’ 등에서 도전했던 액션 연기를 곁들여서다. 드라마에, 코믹에, 액션까지라니 대체 전지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전찬일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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