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쪽방에서 화재로 숨진 무연고 사망자 이수종(가명·67)씨를 쪽방촌 주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쪽방촌주민협동회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식당 폐업 등 사회적 사건에 휩쓸린 뒤 회복 못하고
가난·고독 속 무연고 사망 사례 다수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사회문제


무연(無緣) 사망자 인생에는 사회적인 사건의 파고에 휩쓸려 추락한 가장의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IMF 외환위기 등 자신이 개입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로 어려움을 겪다가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온 경우다. 낭떠러지 아래로 밀린 사람들은 다시 절벽을 오르지 못하고 혼자 숨을 거뒀다. 무연고 죽음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삶은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무연고자가 될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단골손님 현덕영(가명·64)씨와 친구처럼 지냈다. 알고 지낸 지가 20년이라고 했다. 현씨는 영어를 잘하고 학식이 깊은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큰 영어학원도 운영했었다. 하지만 현씨는 가족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학원을 운영했었는데, IMF 외환위기 때 엄청 힘들어졌었다고 하더라고요. 학원도 IMF 사태 오고 1998년쯤에 접었다고 한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는 학생들 가정교사처럼 조그마한 학원에서 강의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IMF 사태 때 학원 무너지고 나서 이혼을 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단골손님의 가족 이야기는 그가 죽은 뒤에야 접할 수 있었다. 현씨는 지난 4월 서울의 한 찜질방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그대로 숨을 거뒀다. 부리나케 달려간 병원에서는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실제로 자녀들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한국에 있던 현씨의 큰누나가 사망 6일 뒤 구청에 ‘형편상 어려움이 있다’(외국 거주)며 시신처리 위임서를 제출했다. A씨는 “미국에 아들이랑 가족이 있는데, 안 나타난다는 말을 들었어요. 간호사들끼리 이야기를 하기에 생각을 했지요. 10년간 유골이 봉안된다는데 그 안에 와서 (유골을) 뿌려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IMF 외환위기가 할퀴고 간 상처는 다른 무연고 사망자의 삶에서도 종종 목격됐다. 김정훈(가명·61)씨는 지난 8월 한낮 기온이 37도까지 오른 날 고시원에서 결핵으로 혼자 죽었다. 그는 자신의 주소지를 서울 남대문의 한 직업소개소로 해 뒀는데, 그 곳 사장은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서 마땅히 (주소지를) 걸쳐 둘 데가 없으니 그랬다”며 그의 과거를 들려줬다.

한 무연고 사망자의 집에서 발견된 수첩 모습.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방세와 전기세 내역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윤성호 기자

김씨는 충북 옥천에서 중국집을 했는데 IMF 사태 이후 망하고 부인과도 이혼했다고 한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근근이 생활해 왔다고 한다. “죽고 나서 경찰이 아들을 찾아 시신을 받을 거냐고 하니까 안 받는다고 했대요. 쪽방에서 살고 하는 게 창피하니까 연락을 안 하고 지냈던 모양이에요.” 이혼 때 정리가 된 듯 그의 호적엔 자녀 기록이 없었다.

이수종(가명·67)씨는 10여년 전 조개구이집을 열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와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이 충돌하는 사고가 났다. 이른바 ‘태안 기름 유출 사고’다. 기름이 바다를 뒤덮었고 조개구이를 찾는 발길이 뚝 끊기면서 이씨 가게는 주저앉았다.

좌절의 늪에 빠진 그는 술에 빠졌다. 가게 문을 닫고, 장사를 위해 미리 떼어다 창고에 둔 술을 모두 마셨다. 결국 병원에 실려 가 그곳에서 지내던 중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가 된 그는 서울의 한 쪽방촌으로 흘러들어왔다.

서울시복지재단 송인주 박사는 “실패가 누적되고 가족이 단절됐을 때 남성이 흡연, 음주 등 건강위해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17일 말했다.

이씨가 세상을 떠난 건 지난해 1월이었다. 춥고 건조한 겨울 어느 날 그가 살던 쪽방 건물에서 불이 났다. “2층에서 살던 분이 라면을 끓이다가 불이 나서 그렇게 되셨어요. 2층 사람들은 빠져 나왔는데, 1층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어르신은 참변을 당하셨어요.” 쪽방촌 주민협동회 관계자는 전했다. 이씨가 숨을 거둔 쪽방 자리에는 쪽방촌 주민들의 편지와 국화꽃이 놓였다. 주민협동회에서는 그의 죽음의 계기가 됐던 휴대용 가스버너 사용을 줄이기 위해 반찬 나눔을 시작했다.

임주언 김유나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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