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윤성호 기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고·장애
공사장 노동자들에겐 더 큰 위협
직업·희망 잃고 술에 의존 다반사
가족도 등 돌려 무연고자로 생 마감


사고와 장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밑바닥 노동’을 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불행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 몸뚱이 하나로 버틴 이들에게는 다시 일어서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근로현장에서의 사고가 노동자들을 빈곤으로 이끌고, 죽는 순간까지 가난과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로는 무연고 사망자의 인생에 흔했다.



방연국(가명·65)씨 시신은 올겨울 서울시립승화원 16번 화장로에 놓였다. 홀로 숨을 거뒀지만 연락을 받은 두 동생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러 나왔다. 1995년 어느날 마지막 얼굴을 본 뒤 24년 만이다.

방씨는 독신으로 죽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내와 사별한 뒤 재혼을 했고, 동생들이 태어났다. 새 가정에 방씨는 적응하지 못했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던 오빠였는데, 사춘기를 겪으면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을 했어요.” 여동생이 말했다.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방씨는 경찰서에서 심부름을 하거나 공사장에서 하루살이 잡부생활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에 다니던 여동생을 가끔 찾아가 맛있는 걸 쥐어줄 정도는 살았다.

방씨 삶이 뒤틀린 건 공사장 사고 이후부터다. “서울지하철 1호선 공사현장에서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사고가 나서 오른쪽 팔목이 잘렸어요. 그때 오빠가 20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아요. 보상금으로 몇 천만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걸 탕진해버렸어요.”

이 사고는 가진 게 몸뿐이던 그를 빈곤과 절망의 늪으로 빠뜨렸다. 한쪽 손목 없이 일용직 일을 하던 그는 2년도 채 되지 않아 또 사고를 당했다. 이번에는 차에 치여 다리를 절게 됐다고 했다. 몸이 불편해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차장 요금관리 정도였다. “손목도 없고, 몸도 안 좋으니까 제대로 일을 해서 먹고살지 못했겠지요. 기초생활수급자였다고 하더라고요.” 동생이 방씨의 인생을 전하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방씨는 재가 됐다.

1956년생인 이영기(가명)씨도 젊었을 때는 공사장에서 일을 했다. 건물 외벽 일을 하는 ‘타일공’이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90년대 초반 그는 여느 때처럼 건물을 타고 타일을 붙이다가 4층 높이에서 떨어졌다. 척추가 손상됐고 거동이 불편해졌다. 얼마간의 산업재해 보상금을 받았지만 재기하지 못했다. “젊은 나이에 척추를 다치면서 결혼도 못하게 됐죠. 그래서 술로 더 살게 된 거지.” 그의 형이 말했다. 정신이 무너지면서 언제부턴가 술을 마시면 주변 사람들과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형제끼리 멀어졌다.

형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이씨가 숨을 거두기 전 살았던 동네 주민들 기억은 달랐다. 노인이 된 이씨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 유일한 가족이 된 강아지 두 마리를 극진히 돌보는 ‘점잖으신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젊은 날 사고로 빼앗긴 직업과 그 여파로 멀어진 가족관계는 이씨를 가난·고독과 헤어지지 못하게 했다. “가족 왕래가 없었던 모양이야. 개하고 맨날 방에서만 사시더라고. 생계는 박스나 폐지 같은 거 줍고, 수급 받아서 사셨어요.”

김용문(가명·61)씨는 운전을 잘했다. 운전병으로 군생활을 마친 뒤 평생 운전대를 잡았다. 마을버스를 몰았고, 어떤 집의 운전기사로 일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쌍둥이 아이들, 아내와 도란도란 사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그런데 40대 초반 병이 그를 덮쳤다. 뇌출혈이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켰지만 후유증으로 몸 일부가 마비됐다. 장애인이 돼버린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IMF 외환위기가 한국을 막 휩쓸고 간 시점이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그에게 달라붙은 장애는 가정마저 무너뜨렸다.

“그분이 살아생전 얘기할 때 그래요. 이혼을 하고 싶지가 않았대요. 애들도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밖에 안됐었으니까. 근데 몸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 돈을 벌 수가 없으니 먹여 살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혼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김씨와 10년 넘게 알고 지낸 지인이 설명했다. 한 번 찾아온 병은 시시때때로 그를 괴롭혔다. 지난 3월 가벼운 접촉사고 이후 김씨는 다시 뇌출혈로 쓰러졌다. 두 달간 병원에 누워 있던 그는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임주언 김판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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