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무연고 사망자의 쪽방.

전쟁 트라우마 고통받던 참전용사
생전지원 못 받고 죽어서야 국가장례


신철수씨(가명·72)는 봄기운이 돌던 3월 초 길에서 죽었다. 근처에서 가게를 하는 상인은 신씨가 이날 오전부터 사거리의 벤치와 길바닥에 번갈아가며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의식이 없어진 신씨를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급성 심장사’(추정). 소지품 하나 없었다.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길과 시설에서 보냈다. 신씨는 주소지를 서울의 한 노숙인 생활시설로 해뒀다. 10년 동안 시설 입·퇴소를 반복했다고 한다. 2017년 초 나간 이후로는 시설과의 연락마저 끊겼다.



구청이 사망 후 세 명의 동생에게 연락했지만 모두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 그들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폭력적으로 굴었던 신씨가 40년 전쯤 집을 나갔고, 이후에는 관계가 단절됐다고 짧게 사유서를 썼다. 그러나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신씨의 가족은 그가 처음부터 폭력적이었던 건 아니라고 했다.

“월남전(베트남전쟁)에 갔다 오면서 충격을 받아 정신이 좀 이상해졌어요. 혼자서 계속 ‘누가 쫓아온다’라거나 ‘땅속에 뭐가 묻혀 있다’고 중얼중얼거렸고, 심할 때는 칼 들고 죽인다고 가족들을 쫓아다니기도 하고….”

20대 청년이었던 신씨는 전쟁에 다녀온 이후 변했다고 한다. 정신이상 증세가 시작된 이후 10년 정도는 부모님 노력으로 함께 살았지만 자꾸만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그를 막기 역부족이었다.

신씨의 가족은 “상태가 너무 심해서 일을 아예 못했어요.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요. 집을 나갔다가 들어왔다가를 반복하다가 행방불명됐어요”라고 말했다. 전쟁 트라우마를 겪었던 신씨에게 국가에서 나오는 지원은 없었던 것으로 가족은 기억했다. 그의 서류엔 기초생활수급 내역도 적혀있지 않았다. 신씨는 무연고 시신이 돼서야 국가 장례 지원을 받아 한 줌 뼛가루가 됐다.

무연고 사망자의 자취를 더듬는 과정에서 국가유공자와 관련된 흔적도 발견됐다. 국가를 위해 공헌한 사람 혹은 그 유족도 외롭고 가난하게 삶을 마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1940년생 임홍진(가명)씨는 혼자 살던 반지하 방에서 숨을 거뒀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국가유공자였다. 그가 세 들어 살았던 집의 주인은 “아버지가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했다던가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처음 임씨가 집을 구해 들어올 때 국가유공자의 자녀인 그를 위해 구청에서 사람이 함께 나왔던 기억도 전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쓸쓸했다. 구청에서 가족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고, 유일하게 기록으로 확인된 조카는 대만으로 출국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임씨의 시신은 한 달하고도 열흘이 지나서야 무연고자로 분류돼 화장터로 향할 수 있었다. 체격이 커서 큰 관을 따로 주문했다고 한다. 구청 관계자는 “유공자 자녀이시다보니 구청에서도 가족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무연고 장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2월 초 찾은 서울의 한 쪽방촌은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들 가운데 한 곳에서 최상구(가명·77)씨는 죽음 직전을 보냈다. 동네 주민들은 최씨가 이곳에서 10년을 지냈다고 했다. 그는 올해 2월 폐결핵으로 병원에 실려가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아 생활하던 최씨가 남긴 것이라고는 너무 오래 써서 때가 묻은 베개와 국가유공자 표창장뿐이었다.

임주언 정현수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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