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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정진영] 한국교회에 휘몰아친 공포

자기편 아니면 용공으로 몰아붙여… 초갈등사회 치유 위한 교계 움직임에 큰 기대


지난 주말 한 목회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평소 한국교회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는 큰 교회의 담임목사다. “원래 예정했던 집회를 취소해야 될 것 같네요. 아무래도 저쪽 사람들이 대거 몰려올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모임의 취지를 살리기는커녕 잘못하면 소동이 일겠어요. 교회에서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모양이 좋지 않고 해서 그만두기로 했으니 그리 아시면 됩니다.” 의외였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으로 자신만만해하더니 갑자기 취소한다니, 심리적 압박을 많이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예정했던 집회’는 한국사회의 초갈등을 교회가 풀어보자는 일환으로 서울 도심에서 개최키로 한 기도회고, ‘저쪽’은 광화문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전광훈 목사 지지자들이다.

한국교회에 공포가 휘몰아치고 있다. 자기편이 아니면 빨갱이나 용공으로 몰아붙이는 광풍이 확산되면서 건강한 교회와 목회자들이 움츠리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복음-평화-통일 콘퍼런스’는 원래 온누리교회 양재예배당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부에서 주강사인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가 종북좌파 간첩인데 어떻게 교회에서 행사를 할 수 있느냐며 반발해 결국 장소를 옮겼고 규모는 축소됐다. 손 교수는 강연 후 “저는 절대 공산주의자도 주사파도 아니며 남한에 와 있는 고정간첩도 아니니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해명해야 했다.

유튜브 인기를 등에 업고 최근에는 극우 성향의 유튜버들이 신앙적·이념적으로 문제가 없는 목회자 등을 종북 좌파라는 내용의 가짜뉴스를 퍼뜨린다. ‘선한 사역’을 하는 이들에 대한 사실관계 검증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극히 일부지만 ‘교계 언론’도 가세해 교계를 혼탁하게 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 보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김형국 나들목교회 목사, 고형원 부흥한국 대표 등 개혁성향을 지닌 이는 물론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교단 목사까지 싸잡아 종북몰이 비난 대상으로 삼았다.

교회를 비아냥거릴 때 흔히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한다’고 한다. 지금은 그 수준을 훨씬 넘었다. 일부 기독 인사들은 교회를 걱정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갈등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고 있다. 극우 기독교인에 태극기 부대, 수구적 정치인, 유튜버 등이 얽히고설켜 교회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한국교회가 더 이상 갈등의 중심이 되는 것을 보고 있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을 주시하던 기독인들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초갈등사회 한국교회가 푼다’는 주제로 오늘 열리는 국민미션포럼에는 교계 안팎의 여러 인사가 동참한다. 기조 강연자인 정세균 국무총리 지명자는 지난 2일 사전 인터뷰에서 “하나님 믿는 일에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며 “교회와 정치권이 함께 갈등을 푸는 리더십을 발휘하자”고 역설했다. 주일학교부터 교회에 다닌 정 지명자는 서울 평창동 예능교회 안수집사다. 포럼에는 교단과 이념의 차이와 무관하게 여러 목사가 참석해 갈등을 조정하는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행사에 함께한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된다. 전광훈 목사가 대표회장인 한기총이 사실상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에서 한교총은 한국교단을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갈등 치유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한교총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 신청을 해 놓고 있다. 한기총을 대신해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함께 명실공히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관의 소명을 감당하겠다는 각오다. 한교총 대표회장 3인 중 한 사람인 김태영 예장통합총회 총회장은 최근 한 언론인터뷰에서 “건강한 교회들이 화해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현실 정치가 교회를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총회 결의문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이 땅에 개신교가 전래된 이래 지금처럼 참담한 지경에 이른 적이 있을까 싶다. 갈등을 속성으로 하는 정치 한복판에 정치 목사 등이 뛰어들어 갈등을 증폭시키며 교회를 힘들게 하고 있다. 갈등을 푸는 것은 사랑과 용서고 여기에는 회개가 전제돼야 한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 새해에는 한국교회에 ‘나부터’라는 회개의 물결이 넘치고 넘쳐 화해하고 포용하는 일상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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