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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문록] 다시, 가족의 탄생


20세기 후반 무렵부터 새로운 인간‘족(族)’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의 인류학적 분류법과는 달리 주로 맞벌이 여부와 자녀의 유무로 구분되고 분류된다. 일테면 이런 식. 일부러 자녀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 딩크족. 반대로 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 듀크족. 맞벌이를 해서 경제적 여유는 있지만 바쁜 업무로 정작 돈을 쓸 시간이 없는 딘트족. 자녀는 없지만 반려동물은 있는 딩펫족.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명명된 펫팸족.

반려견문록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상 인간견문록이라고 해도 무방한 인간사회 체험담을 써온 나로서는 단지 그 두 가지 기준으로 인간‘족’을 구분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아무도 이런 분류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인간에게는 맞벌이 여부와 자녀 유무, 다시 말하면 경제력과 가족 구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일 거다. 펫팸족은 펫(pet)과 패밀리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반려동물을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고 챙기고 보살피고 아낀다. 가족의 범위를 규정해놓은 우리나라 현행 민법 제779조에 의하면, 가족이란 기본적으로 혈연과 혼인으로 연결된 2인 이상의 집단, 즉 자신을 중심으로 배우자나 형제자매, 부모와 자녀 같은 직계혈족을 말한다.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심지어 종속과목(種屬科目)이 다른 동물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영국 혈통을 가진 요크셔테리어인 나 역시 누나와 가족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서, 누군가 누나를 건드리고 해치려고 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공격 자세로 돌변한다. 가족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거니까.

사람들이 흔히 ‘정상 가족’이라고 불렀던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 줄고, 부부로만 이루어진 2인 가구나 비혼의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는 요즘, 사람 가족의 빈자리를 동물 가족이 채우는 일은 더 이상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예전엔 어린 자녀를 쓰다듬으며 “아이고, 내 강아지”라고 했지만, 이제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아이고, 내 새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딩크족이나 듀크족 등의 말을 만들어내고 또 사용하는 이들의 주 관심사가 맞벌이 여부나 자녀 유무인 것처럼 펫팸족이란 용어를 환호하는 이들의 주 관심사는 가족 그 자체가 아니라 ‘펫산업’이다. 그들은 가족이란 이래야 한다고 부추기고, 가족에겐 이런 것들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꼬드긴다. ‘우리 집에만 없어’라고 불평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다른 가족과 견주고 비교하게 만든다. 천차만별의 가족을 정형의 틀 안에 가둠으로써 세상의 가족을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으로 나누고, 앞선 가족과 낙후된 가족으로 이분화한다. 사람들이 자녀를 낳지 않는 사회는 반려동물을 순순히 가족으로 인정해주는 대신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곧장 산업으로 연결해서 또 다른 욕망을 부추기는 걸 멈추지 않는다. 반려동물은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을 주고받는 가족이 아니라 사람가족처럼 먹고 마시고 씻고 놀고 소비하는 대상이 되어 간다.

서당개 3년, 아니 카피라이터집 개 15년. 비혼 1인 가구 누나의 가족으로 살면서 나는 인간사회를 체험하며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과 공감하며 사는 법을 배웠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기업이 뭐라고 생각하든 반려견에게 인간은 오직 더 사랑해야 할 대상이므로. 온 생애를 다해 인간과 소통하고 사랑하기. 그게 반려견 가족이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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