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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김영석] 마빈 밀러 그리고 최동원


지난주 짧은 외신이 전해졌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마빈 밀러의 명예의 전당 입성 소식이다. 2012년 95세로 세상을 떠난 밀러는 세 번의 도전 끝에 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초대 위원장이다.

밀러는 야구선수 출신이 아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군수산업노조에 들어갔다. 철강노조 대표를 맡다가 1966년 선수노조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선수노조는 이미 존재했지만, 밀러의 등장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겪게 됐다. 68년 메이저리그 구단주 그룹과 선수노조 간의 첫 노사 협약을 이끌었다. 최저 연봉 1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70년에는 연봉조정신청 제도를 마련했고, 자유계약선수(FA) 제도를 확립했다. 3차례의 파업도 불사했다. 특히 선수들조차 인식하지 않았던 ‘노동자’ 개념을 확립시킨 이였다. 일본프로야구에도 선수노조가 있다. 80년 선수회가 발족했다. 그런데도 일방적인 해고가 이어지자 80년대 중반 선수노조를 결성했다. 이후 선수노조는 FA 제도 도입을 관철했다. 최저 연봉 인상은 물론이고 에이전트 제도도 일찌감치 도입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선 88년 선수회 결성 시도가 있었다. 주도했던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 소속 고(故) 최동원이다. 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따내며 롯데의 첫 우승을 일궈낸 투수로만 많이 기억된다. 당대 최고의 투수이자 고액 연봉 선수였던 그가 선수회 결성을 주도했다. ‘선수 간의 경조사 부조와 친목’을 내걸었다. 결국, 구단들의 강력 대처에 밀려 해산됐다. 그해 11월 최동원은 삼성 라이온즈 김시진과 트레이드됐다. 역대 최악의 보복성 트레이드다. 최동원은 이후 2년 동안 삼성에서 7승을 거둔 뒤 쓸쓸히 은퇴했다. 2011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53세였다.

현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있다. 2001년 1월 어렵사리 결성됐다. 구단들의 집요한 방해 공작이 있었지만, 야구팬들의 열화 같은 지지 덕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야구팬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19년 동안 이어져 온 흑역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게임에 활용되는 초상권 등을 둘러싼 갈등은 오랜 기간 계속됐다. 일부 집행부는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되기까지 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선수를 옹호하는 성명을 버젓이 발표하던 선수협이다. 회장을 맡으려는 선수가 없어 2년 동안 공석으로 있었다. 롯데 이대호가 올해 등 떠밀려 선임됐다.

최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제시한 FA 등의 제도 개선안이 이사회에선 부결됐다. 그런데 일부 선수가 참여한 총회에선 인준됐다. 선수협 이사회와 선수 간의 생각이 너무나 다름을 여실히 보여준 대목이다. 이사진에는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구단 주장급 선수들이 모여 있다. 현장에는 최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그러기에 선수협은 배부른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부상을 당해도 구단의 보상금을 제외하곤 모두 개인 부담으로 처리해야 한다. 구단의 일방적 방출 또는 트레이드에도 방어 수단이 없다. 단체행동권은 고사하고 교섭권조차 없는 선수협이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벌써 37년이나 흘렀다. 고액 연봉 선수들의 친목 단체로 전락한 선수협은 존재 의미가 사라졌다. 600명 안팎 선수들의 목소리를 아우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선수노조로의 변화를 꾀할 시점이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선수노조를 전적으로 맡을 전임 회장 체제를 꾸려야 한다. 밀러와 같은 추진력을 갖춘 전임자를 세우는 게 올바르다.

그리고 희생정신이다. 최동원은 당시 자신만 생각한다면 선수회를 만들 필요가 없었지만, 후배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앞장섰다고 했다. 30여년 전 최동원의 뜻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저연봉·저연차 선수들도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그라운드를 만들어줄 인물이 필요하다. 800만 관중 시대가 무너진 한국프로야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도 밀러와 최동원 같은 인물이 절실하다.

김영석 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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