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16강 대진이 16일(한국시간) 결정됐다. 16강 자리엔 유독 익숙한 팀들이 많았다. 역대 처음으로 16개 팀 모두가 유럽의 5대 리그(스페인·잉글랜드·독일·이탈리아·프랑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5년만 돌이켜봐도 올 시즌은 생소하다. 그동안 5대 리그 이외의 팀들은 토너먼트 16강 자리 중 적어도 2자리를 채워 경쟁에 신선함을 불어 넣었다.

지난 시즌엔 포르투와 아약스가 합류해 아약스가 4강 돌풍을 일으켰다. 2017-2018시즌엔 바젤·포르투·샤흐타르 도네츠크, 베식타스까지 4개국을 대표하는 팀들이 16강에 진출했다. 2016-2017시즌과 2015-2016시즌에도 각각 2팀(벤피카·포르투)과 4팀(PSV·벤피카·디나모 키예프·헹크)이 16강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올 시즌엔 어떤 팀도 5대 리그 독점체제를 깨지 못했다.

리버풀 선수들이 6월 3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 도심에서 수많은 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카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신화뉴시스

진출권 배분 방식 변경이 초래한 독점

이런 이례적인 상황엔 UCL 진출권 배분 방법 변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 UEFA는 지난 시즌부터 UCL 플레이오프를 대폭 축소했다. 과거엔 리그 순위 1~3위 국가에서 3팀, 리그 순위 4~6위 국가에서 2팀, 리그 순위 7~12위 국가에서 1팀씩 총 21팀과 전 시즌 UCL 우승팀이 본선에 직행했다. 나머지 10개의 자리는 플레이오프에 할당됐다. 3대 리그 4위 팀들도 플레이오프에서 군소리그 팀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부터 규정이 변경됐다. 4대 리그 4위 팀까지는 본선 자동 진출을 보장 받는다. 리그 순위 5~6위 국가 상위 2개 팀과 7~10위 국가의 1개 팀들도 본선에 직행한다. 여기에 UCL 우승팀과 유로파리그 우승팀까지 총 26개 팀이 본선행을 확정한다. 군소리그 팀들은 고작 6자리를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됐다. 상위 리그 팀들이 수월하게 본선 무대를 밟는 반면 군소리그의 기회는 제한되는 ‘쏠림’이 심화된 것이다.

터키 축구선수 하밋 알틴톱이 지난 16일(한국시간) 스위스 니옹의 유럽축구연맹(UEFA) 본부에서 챔피언스리그 16강 대진 추첨에 참석해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 ‘빅 이어’ 옆에서 스페인 FC 바르셀로나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키스톤뉴시스
모든 추첨이 끝난 뒤 전광판에 표시된 16강전 대진표의 모습. 키스톤뉴시스

‘돈 잔치’에 개입된 큰 손의 그림자

빅리그 큰 손들의 이해관계가 UEFA의 규정 변경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UCL은 대표적인 ‘돈 잔치’다. 본선 무대에 오르면 1500만 유로를 받는다. 이후 16강(950만 유로), 8강(1050만 유로), 4강(1200만 유로), 결승(1500만 유로)까지 성적에 따라 상금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우승팀의 경우 400만 유로를 받지만 조별 예선과 토너먼트에서 승리시 270만 유로, 무승부시 90만 유로가 별도로 누적된다. 결국 모든 게임에서 이기고 우승할 경우 우승팀은 무려 8220만 유로(약 1068억)의 돈 방석에 앉게 된다. UEFA 랭킹과 TV중계권료 배분까지 합치면 액수는 더욱 불어난다.

올 시즌 UCL 16강 진출 팀 중 11팀이 미국 언론 포브스가 선정한 올해 최고 가치 팀에 속한다. 유럽 축구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국가와 팀들이 천문학적 소득을 올릴 수 있는 UCL 무대에서 약소 리그 팀들의 기회를 제한하고 얻은 과실로 배를 두둑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UCL은 어느덧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B조 조별예선 경기에서 손흥민이 올림피아코스 루벤 세메도의 태클을 피해 드리블하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겨울이적시장도 빅 팀들의 잔치상

게다가 올 시즌부터는 ‘컵 타이드(Cup-tied) 룰’이 삭제되며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한 선수가 전 소속팀에서 유럽 리그 경기에 나선 경우에도 토너먼트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컵 타이드 룰은 빅 클럽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시즌 도중 영세한 팀 선수를 빼돌리는 걸 막기 위해 유럽 무대 출전 경력이 있을 경우 새 소속팀에서 경기를 뛸 수 없게 한 규정이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클라스 얀 훈텔라르, FC 바르셀로나 시절 필리페 쿠티뉴가 이 규정에 걸려 즉시 전력감으로 UCL에 활용되지 못했다. 이런 제한은 이제 없어졌다. 각 팀들은 최대 3명을 영입해 16강 이후의 토너먼트 무대에서 활용할 수 있다.

변화는 벌써부터 감지된다. 빅 클럽들은 겨울 이적시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즉시 전력감의 수급에 활발히 나서고 있는 상태다.

리버풀은 19일 UCL 조별리그에서 활약한 미나미노 타쿠미(잘츠부르크)와의 725만 파운드 계약을 성사시켰다. 첼시는 티모 베르너(라이프치히), 무사 뎀벨레(올랭피크 리옹), 제이든 산초(도르트문트)와 엮이고 있다. 나폴리는 루카스 토레이라(아스날), 레알·바르셀로나는 은골로 캉테(첼시)를 노린다.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적은 팀들은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들을 겨울에 곧바로 영입하기 힘들다. 빅 클럽들의 자본력은 UCL의 성공뿐 아니라 추후 기대소득과 더 큰 성공까지 담보할 태세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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