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최후의 만찬’에 참예하는 순례객 줄이어

[세계교회 점 잇기 <10>]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지난 4일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서 관람객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고 있다. 벽화 보존을 위해 방문객 수와 시간을 철저히 통제한다.

올해는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서거 500주년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말년을 지내고 묻혔지만, 생애 가장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던 곳은 이탈리아 밀라노였다. 밀라노는 그의 삶과 작품을 기념하는 ‘밀라노 레오나르도 500’ 행사를 시내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다빈치는 1482년 나이 서른에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밀라노 루도비코 스포르자 공작은 다빈치에게 밀라노 구시가지 외곽에 있는 도미니크 수도회에 소속된 수도원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의 식당 내부 북쪽면 벽화를 의뢰했다. 식당이기 때문에 밥 먹는 장면을 선택했으리라. 다빈치는 당시 성화들과 달리 ‘최후의 만찬’에 원근법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 배신을 예고하는 발언(요 13:21)을 들은 제자들의 감정도 표현했다.

벽화의 상태는 완성되면서부터 나빠지기 시작했다. 다빈치는 벽화를 그릴 때 흔히 사용하는 프레스코 화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충분히 시간을 갖고 작업할 수 있는 템페라 화법을 선택했다. 작업은 1494년에 시작해 1498년에 마쳤다. 다빈치가 기량을 마음껏 펼쳤던 템페라 화법은 식당의 습도에 취약했다. 게다가 밀라노의 연중 평균 습도는 75% 이상으로 우리나라보다도 5%가량 높다.

17세기에 이르면 벽화로서 가치를 상실해 1652년 이 벽에 문을 낼 정도였다. 그 바람에 예수의 발아래 부분 그림이 잘리는 수모를 겪었다. 식당은 그 뒤로 마구간 감옥 등 여러 용도로 쓰였고 홍수와 전쟁 등으로 망가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수도자들이 모래주머니로 보호벽을 쌓아 1943년 폭격을 겨우 버텨냈다.

벽화는 대중의 분노를 산 덧칠을 포함해 각종 보수작업이 진행됐고, 아예 벽을 떼어내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려는 시도까지 이뤄졌다. 1970년대에는 벽화가 있는 자리를 안전한 장소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21년에 걸쳐 대대적 복원에 착수했다. 본래 모습이 아닌 것은 모두 걷어냈다. 적외선 반사경 같은 과학기술과 엄격한 원칙에도 끝내 복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지금은 훼손을 막기 위해 관람객의 방문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한 번에 최대 30명씩 단 15분만 관람할 수 있다.

수도원 건너편 ‘레오나르도 포도원’에 다빈치 생전과 같은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말바시아(Malvasia di Candia Aromatica) 포도나무가 나란히 심겨져 있다. 포도원은 2015년에 복원됐다.

다빈치의 밀라노 시절을 연구한 포도주 양조학자 루카 마로니는 다빈치가 쓴 편지와 다른 문서들을 통해 다빈치에게 포도원이 있음을 알게 됐다. 스포르자 공작이 1499년 ‘최후의 만찬’을 그린 대가로 다빈치에게 포도원을 하사한 것이다. 다빈치는 프랑스군의 침략으로 포도원을 떠나야 했지만 몇 년 후 다시 찾았다. 포도원은 그의 유언장에도 포함할 정도로 아끼는 곳이었다.

다빈치는 포도나무를 직접 재배하고 관찰했다고 한다. 땅으로부터 뿌리와 가지, 잎을 통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수액의 순환에 관해 적었다. 포도주에 관한 메모와 스케치도 남겼다. 다빈치가 죽은 뒤 포도원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20년대엔 화재와 도시계획으로 아예 없어졌다. 1943년 연합군의 폭격은 수도원뿐 아니라 이곳 주택가도 폐허로 만들었다.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의 복원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루카 벨트라미가 1920년 다빈치의 포도원이 있던 자리를 찾아내 찍어둔 사진이 있었다. 포도원의 위치는 다빈치가 벽화를 그린 수도원 바로 길 건너편이다. 2007년 루카 마로니와 밀라노대 연구팀은 다빈치가 어떤 포도종을 재배했는지 이 포도원 자리를 발굴했다. 땅속에서 찾아낸 DNA로 포도종은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말바시아의 일종임이 밝혀졌다. 2015년 연구팀은 ‘레오나르도 포도원’에 말바시아 묘목을 심었다. 이렇게 조성된 포도원은 2015년 밀라노 세계박람회를 기해 일반에게 공개됐다.

밀라노는 313년 동서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만나 기독교도 다른 종교처럼 권리를 보장해주기로 협의한 도시(밀라노칙령 당시 서로마제국의 수도)다. 기독교 역사의 깊이는 이 도시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후의 만찬’이나 ‘레오나르도의 포도원’ 복원처럼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우리의 신앙도 원래 모습을 되찾아내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밀라노=글·사진 박여라 영문에디터 ya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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