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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고승욱] 다수결이어서 승복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 기본원리는 과반수가 아니라 만장일치적으로
규칙에 동의한 뒤 그에 따라 의사결정을 이뤄가는 과정
민주주의의 힘은 만장일치를 향해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데서 나온다


10명이 산에 가서 길을 잃었다. 어렵게 찾아낸 하산길은 세 갈래. 6명은 동쪽으로, 3명은 남쪽으로, 나머지 1명은 북쪽으로 가자고 한다. 10명 모두 자기 생각을 100% 확신하고, 잘못된 길로 갈 경우 목숨이 위태롭다면 답은 한가지다. 헤어져야 한다. 어떤 색의 옷을 입을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개인의 선택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수반되는 위험은 스스로 책임지면 된다.

하지만 집합적 선택은 다르다. 산에서 길을 잃은 10명에게 ‘헤어질 수 없다’라는 조건을 부여하면 공공선택론이라는 학문영역의 주제가 된다. 이 경우 다수결에 따라 6명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그 자리에 앉아 만장일치 합의가 나올 때까지 서로를 설득해야 하는가. 오랜 설득과정을 거쳐 9명이 동쪽이 맞는다고 했는데 나머지 1명이 끝까지 아니라고 한다면 기절이라도 시켜 끌고 가야 하는가. 9명이 잘못 판단했다면 억지로 끌려간 1명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10일 2020년도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다수결의 옳고 그름을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예산안 통과가 지난 4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 처리를 향한 출발점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집권여당 대표가 “민주주의는 결국 다수결”이라고 말한 뒤 갈등은 거세졌다. 곳곳에서 거친 말이 오갔다. 누군가 자유선거와 다수결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원리라고 했고, 소크라테스도 결국 다수결로 독약을 마셨다는 반박이 나왔다. 극단적인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어느 날 포퓰리즘으로 해석했는데, 다른 날에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광장민주주의가 됐다. 여의도에는 다수의 횡포와 패권주의, 소수에 의한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거창한 말이 매일 쏟아지는 중이다.

제임스 뷰캐넌은 1986년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다. 입법을 향한 일반적인 의사결정이 봉쇄된 지금의 여의도를 보며 그의 공공선택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뷰캐넌의 생각을 요약하면 ‘집합적 결정을 할 때 사람들은 결과에 수반되는 비용과 의사결정 비용을 합한 총량이 가장 적은 규칙을 선택한다’이다.

만장일치는 결과에 수반되는 외부비용이 없지만 합의에 이르기까지 고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초자치단체에서 공원 한곳을 만들려 해도 생각이 서로 다른데 국가가 중대한 결정을 할 때 국민 모두의 동의를 받기란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설득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보상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래서 재적 과반수, 참석 과반수, 다수결, 3분의 2 이상 찬성, 4분의 3 이상 찬성 같은 다양한 규칙이 존재한다. 뷰캐넌은 이 규칙을 정하는 선택을 ‘헌법적 결정’이라고 불렀다. 헌법적 결정은 당장 목숨을 건 하산길을 정하는 게 아닌 만큼 만장일치적 합의가 가능하다(뷰캐넌·고든 털럭, 국민 합의의 분석, 2018).

일단 그렇게 규칙이 정해지면 이해가 상충하는 여러 사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운영적 결정’을 어렵지 않게 성사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다수결이나 과반수가 아니라 만장일치적으로 규칙에 동의한 뒤 그에 따라 의사결정을 이뤄가는 과정인 것이다.

국회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놓인 집단을 대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소리지르고, 욕하고, 심지어 주먹다짐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비난이 쏟아지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자기 일이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을 국회에 보낸 지역주민, 소속된 정당의 이념과 노선을 지지하는 지지자를 대신해 체면, 품위, 부끄러움을 접어뒀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겠지만 ‘민의의 전당=서로 싸우는 곳’이라는 본질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점잖고 합리적인 인사가 국회의원이 되면 자꾸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통합을 위해 할 일이 그만큼 많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수결 또는 과반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많기에 정당성을 갖는 게 아니다. 국회에서는 중대한 국가적 사안을 토론해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칡과 등나무처럼 얽힌 이해관계가 입법이라는 결과물로 조정된다. 모든 사안이 국민의 삶과 직접 연결돼 있다. 고되게 사는 사람에게는더욱 그렇다. 그런 결정을 매일 수십건씩 해야 한다. 욕설과 주먹이 없는 상황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그런 심각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규칙을 적용할지를 미리 정할 수밖에 없다.

왜 다수결에 승복하는가. 그렇게 하기로 하고 국회의원이 됐고, 그런 약속을 전제로 정당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힘은 다수결에서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만장일치를 향해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헌법적 결정으로 정해진 규칙은 지켜야 한다. 지금은 그 약속을 지킬 때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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