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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박민지] 멈춘 시간들

너무 어려 속수무책 당해야 했던 친족에 의한 성폭력… 처벌 가능하도록 공소시효 없애야


시간이 흘러야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피해가 있다. 몰라서 견뎠고, 무서워서 참았을 아동기 성폭력이 그렇다. 가해자가 아빠라면 입은 더 무거워지고는 했다. 어느덧 성인이 된 그들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자 법이 막아섰다.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돌아가라며.

딸만 셋이었던 집. 아빠는 늘 세 자매를 때렸다. 순했던 둘째에게 유독 모질었다. 엄마는 남편의 폭력성 탓에 집을 나간 지 오래였다(다 큰 딸들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빠는 딸들 옷을 벗기고 족쇄를 채워 감금했다. 그때마다 아빠의 손에는 쇠파이프가 들려있었다.

고문에 가까운 매질의 끝은 성추행이었다. 벗은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빠의 매섭던 눈빛과 몸을 더듬던 거친 손의 촉감을 세 자매는 또렷이 기억했다. 성적 특징이 나타나는 사춘기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아빠는 목욕을 직접 시켜주고는 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아빠를 거부했다. 알몸으로 도망쳤지만 이웃들은 번번이 집으로 돌려보냈다. 결국엔 집. 돌고 돌아 다시 아빠의 품. 일반적이지 않았던 여러 날이 세 자매에게 겹겹이 쌓였다. 성폭력이라는 걸 알기에 그때는 너무 어렸다. 아빠가 무섭긴 했어도 ‘비정상’인 줄은 몰랐다. 겪은 일의 실체를 알 만큼 컸을 무렵에도 가엾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빠가 있는 집으로 눈을 질끈 감고 들어갈 뿐이었다.

숨죽여 울었던 아이들은 아빠의 재혼으로 분리될 수 있었고 어느덧 40대 중년 여성이 됐다. 지난달 4일 마침내 경찰서로 향했다.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피해를 본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빠의 표정, 아빠의 목소리, 아빠의 냄새에서 자유로운 날은 없었다.

딸들은 이제 시작인데 사건은 종결돼 있었다.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경찰은 세 자매를 돌려보냈다. 이런 범죄의 형량을 늘린 성폭력 특례법은 2000년 이후 사건에 한정한다. 그 이전에 벌어진 성추행의 공소시효는 10년. 지나도 한참 지났다. 친족 성폭력 가해자 대다수는 40대다. 여기서 피해자의 나이를 유추해볼 수 있다. 대부분 초등학생 정도다. 대략 10세라고 쳐도 10년 후면 20세. 적어도 그 안에 신고해야 한다. 세 자매는 그 시절 아빠의 나이가 돼서야 법정에 설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아빠는 멀찌감치 달아나 법 테두리 밖에서 “10년도 더 된 일인데 사과할 게 뭐가 있느냐”며 심드렁해 했다. 그 입에서 나온 ‘10년’. 공소시효가 지난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떠오를 때마다 역했던 날들로 딸들의 시계태엽이 되감겼다.

아빠에게 성폭력을 입은 어린 딸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혼자 살아내야 할 세상이 더 막막했을 테니 곧장 피해 사실을 폭로할 수 없다. ‘아빠를 벌한 딸’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털어낼 재간도 없다. 비단 강자와 약자의 사이로만 해석되지 않을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를 ‘배은망덕한 딸’이 잘라내려 한다는 사실을 사회는 쉬이 받아들이지 않을 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어린 딸들은 아빠를 신고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친족 성폭력은 양지에서 논의될 수도 없었다.

이 범죄가 지닌 특수성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친족 성폭력 피해 사실을 환갑이 돼서야 털어놓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때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잔상은 반항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너무 어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현실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실제로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법의 인정과 보호를 받으며, 가해자가 처벌받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상처를 치유 받는 경우가 많다. 이를 ‘회복적 사법 치유 절차’라고 부른다. 피해자들은 언제든 이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맥락에서 ‘부성애’라는 단어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이었을지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었다. 함께 분노하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배려하려 가해자 입장은 적지 않는다. 미성숙한 가해자는 죄를 감해주는 수많은 조항의 보호를 받는다. 왜 피해자의 미성숙함은 고려대상이 아닐까. 친족 성폭력 사건에 공소시효는 없어져야 마땅하다. 아빠의 성폭력 앞에서 세 자매가 왜 의연해져야 하는지 조금도 모르겠다.

박민지 온라인뉴스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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