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의 문화산책] 그때의 성탄절을 아십니까


해마다 12월이면 상인들은 성탄절 특수를 기대하며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해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상인들의 상술은 성탄절의 본질을 왜곡한다지만 젊은이들도 즐겁고 흥겨운 성탄절을 맞이하려는 마음은 상인들 못지않다. 사실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탄절의 본질을 찾기보다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꿈꾸며 낭만과 감성에 빠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성탄절을 기다렸던 12월은 순식간에 지나갈 만큼 분주했다.

그 시절의 12월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있을 성탄발표회 준비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예배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길었다. 해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 탕자의 비유 등 여러 가지 주제로 어설픈 연극을 했고, 부서별로 프로그램을 준비해 발표했다. 예술적인 감각은 없었지만 성탄절을 준비하는 즐거움이 넘쳤던 절기였다. 학생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귀찮아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발표회가 끝나면 부서별로 모여 선물교환이 이루어진다.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고 결정하지만 주로 학용품과 유리상자 안에 들어있는 인형이었다. 어느 해인가 선물교환에 잿빛 토끼 두 마리를 선물로 준비해온 친구가 있었다. 박스를 열자 학생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고, 토끼 두 마리는 감동과 즐거움이 넘치는 최고의 성탄절 선물이었다. 선물은 그냥 받아갈 수 없었고 반드시 자신의 장기를 자랑하는 등 벌칙을 받아야 했다.

자정을 넘어 새벽 1시쯤 되면 중고교생부터 청장년까지 새벽 찬양을 위해 예배당으로 모인다. 해마다 이 시간에 먹었던 얼큰한 동탯국은 얼었던 몸을 녹이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 최고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새벽 찬양대를 조직하는데, 가까운 거리는 한두 시간 안에 끝나지만 먼 거리는 3~4시간이 필요한 곳도 있었다. 젊은이들은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녀와야 했지만 서로 이곳으로 가려고 자신이 편성된 찬양대를 몰래 이탈하기도 했다.

새벽 찬양대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을 바꾸어가며 합창했다. 새벽 찬양대는 성도들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가정과 기관은 빼놓지 않고 찾아갔다. 새벽잠을 깨운다고 타박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모두 고마워했다. 어떤 가정은 찬양대를 위해 따뜻한 차를 준비하여 대접했고,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매서운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새벽 찬양대의 수고를 격려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성탄절 새벽 찬양은 소음공해가 되어 성탄의 기쁜 소식과 새해를 축복하는 기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주거환경이 공동주택으로 바뀌면서 자신의 생활공간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들었던 성탄 캐럴은 요즘 들을 수 없다. 삶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는 오늘의 세상은 좋은 것을 서로 나누지 못한다.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을 서로 나누지 못하는 세상은 인간관계 갈등만 더 커져 가는 느낌이 들어 걱정스럽다.

유영설(여주 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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