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여행을 가셨다. 덕분에 막냇동생(강아지)과 일주일을 지냈다. 처음 데려올 때 부모님보다 내 얼굴을 먼저 본 녀석이라 각별한 사이였다. ‘뭐 그 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더랬다.

첫 주말을 함께할 때만 해도 기대 이상이었다. 낯선 집에서도 거부감 없이 먹고 마시고 노는 모습에 ‘걱정할 것 없군’ 재차 안심을 했다. 본가에 들를 때면 미친 듯 반기고, 헤어질 때 아쉬워 동동 뛰던 녀석이 항상 눈에 밟혔었다. 산책하고, 공놀이도 하고, 함께 자고, 24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출근을 하면서 상황도 감정도 조금씩 변해갔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녀석을 홀로 놓아두고 걱정과 번거로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복도식 아파트라 소리에 예민할까 현관 앞에 펜스를 둘렀다. 빈집에서 짖어대면 진정시킬 사람이 없으니 층간소음이 걱정돼 텔레비전도 적당히 틀어뒀다. 늦을 때면 어두워 혼자 무서울까 아침부터 조명을 켜 뒀다.

일상도 전쟁이 됐다. 큰 볼일은 밖에서 가리는 친구라 출근 전 산책이 일상이 됐다. 연말연시 약속이 많아 귀가가 늦으니 걱정만 늘었다. 퇴근 후 들러 밥을 챙기고 놀아주다 다시 약속 장소로 나섰다. 한밤중에 돌아와서도 또 볼일을 보러 나갔다. 격조한 낮의 아쉬움을 보충이라도 하듯 안기고, 놀아 달라 채근하고, 짖었다. 서너 시간 졸다 일어나 녀석부터 챙기고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주말쯤 되자 서로 지친기색이 역력했다. 누군가 종일 함께 있는 게 당연했던 녀석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왕왕 토했고, 산책 전 집 안에 실례를 했다. 보호자는 보호자대로 종일 비몽사몽 렘 수면에 빠졌다. 일어나 밥 먹고, 잠깐 놀고, 다시 잠들고, 똥 싸고, 치우고, 잠깐 놀고, 다시 잠들고, 둘은 거울처럼 시들어 있었다.

딩크(DINK·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로 지내면서 주변에서 ‘좋은 소식 없냐’는 얘기를 인사처럼 들어왔다. 워킹맘, 워킹대디의 고충을 안다는 듯 “아유, 아직 자신이 없어서요” 둘러댔지만 사실 먼 나라 얘기로 여겼다. 고작 일주일 강아지 돌보기와 육아가 천지차이로 다르다는 것쯤은 안다. 그럼에도 여태 말로만 공감하는 척했던 그들의 피로와 우울을 만분의 일이나마 이해하게 됐다면 오만일까.

숙제를 미루듯 퇴근 대신 잔업을 붙잡고 있던 선배, “주말 잘 쉬세요” 인사에 “주말이 더 바빠”라며 씁쓸하게 웃던 얼굴, 육아휴직 말미에 “출퇴근이 그리워질 줄 몰랐다”며 멋쩍어하던 친구, “너무 예쁜데, 죽을 만큼 힘들다”던 맞벌이 아빠의 한숨, “밥 한번 맘 편하게 먹는 게 그렇게 소중한 시간인지 예전엔 몰랐다”는 초보 엄마의 눈물. 이제 24시간 혼자가 아닌 그들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더 바쁘고 더 자주, 더 빠르게 시들어보였다.

올해 3분기 출생아 수가 7만명대에 머물면서 역대 최소에 그쳤다. 합계출산율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0명을 밑돌 것이 확실시된다. 경제적 요인이 제일 클 것이다. 부부 각자의 경력단절 위험도 적지 않다. 덕분에 다자녀 가정이 애국하는 시대, 하나 낳아 잘 키우기도 빠듯한 시절이다. 유사 이래 그랬듯 일과 가정을 척척 꾸려가는 이들은 우리 부모님들처럼 존경받아 마땅하다. 동시에 아이 없는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원치 않는 염려와 동정, 나아가 은근한 책망과 계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육아휴직, 탄력근무제 등 매년 육아 관련 정책은 업데이트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유일하게 좋아진 점이 ‘일퇴(일찍 퇴근)’라는 얘기처럼 가정에 쏟을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하지만 ‘내 한몸 챙기기도 버겁다’는 청년층의 혼인율, 출산율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책 지원을 조금 더 해주고, 경제적 부담을 조금 덜어준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결혼 후 처음 둘만의 휴가를 다녀온 선배에게 “푹 쉬고 오셨겠다” 인사를 건넸다. “일 며칠 쉬다 하는 건 낫지. 애를 며칠 안 돌보다 다시 보려니 몇 배는 힘들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돌아갈 일상에 쉼표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일까.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 일상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는 무릎을 타고 손등을 베개 삼아 주무시고 계신다. 너무 예쁜데, 죽을 만큼 힘든 이 친구를 볼 때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되묻게 될 것 같다.

정건희 산업부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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