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처럼 역동적인 도약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일본처럼 장기 정체의 길로 갈 것인가
시대를 통찰하는 생각과 이를 실현할 담대한 리더십 필요


일본의 1995년 1인당 국민소득이 4만2000달러였다. 2018년 국민소득은 4만1000달러다. 23년간 일본의 국민소득은 제자리다. 그나마 아베노믹스로 좀 회복되어 그렇다. 미국은 1995년 2만9000달러였는데 2018년 6만4000달러다. 이스라엘은 1995년 국민소득이 1만7000달러였는데 2018년 4만1000달러다. 싱가포르는 같은 기간 2만3000달러에서 5만8000달러가 되었다. 한국은 1995년 1만2000달러 수준이었는데 2018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경제대국 경쟁에서는 미국이 훨훨 난 데 비해 일본은 기었다. 신흥국 유망주 경쟁에서는 이스라엘과 싱가포르가 도약하고 한국도 선전했지만 격차는 벌어지는 형국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한국이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처럼 역동적인 발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일본처럼 장기 정체의 길로 갈 것인가? 그 기로에 있다.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는 한마디로 혁신의 힘이 이끌어낸 성공 사례들이다. 인재를 양성하거나 끌어들이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이를 바탕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혁신기업들을 창출하고, 여기에 열광해 투자가 몰린다는 것이 이들 세 나라의 공통점이다.

아울러 정부가 이 과정에서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촉진자 역할을 했다. 간섭과 규제를 통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기업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하고 개별기업이 할 수 없는 일들은 정부가 앞장서 해결했다. 미국의 곳곳에 특성화된 ‘실리콘밸리’ 모델이 구축되는 데 지방정부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연방정부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싱가포르의 모델은 정확히 산학협력을 넘어 정산학 협력 모델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혁신기업들의 장애물을 앞장서 걷어주는 창업국가임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공무원이 가장 유능하다는 얘기를 듣는 싱가포르는 시장의 선순환을 위해 마중물뿐 아니라 수로도 내준다. 인재 유치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반면 일본은 뛰어난 기술력과 자금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초고령화의 무거운 압력에 눌리고 교육 노동 규제 복지 등에서 혁신이 지체됨으로써 발전의 동력이 약해졌다.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국가가 돈을 풀어 경기 부양 정책을 반복했지만 국가부채만 늘었을 뿐이다. 초고령화의 부정적 영향이 혁신의 긍정적 파동을 상쇄한 것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다.

2019년 한국이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의 모델로 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가장 극명한 지표가 투자다. 한국에서의 투자는 줄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투자는 급격히 늘었다. 이스라엘 싱가포르 한국의 공통점이 자원은 없고, 사람은 우수하다는 것인데 그나마 인재 양성과 유치에서 이들 나라와 비교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글로벌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의 교육 개혁은 거꾸로 가고 있다. 자사고나 특목고를 없애고 정시 확대나 하는 것이 혁신의 파동을 불러올 교육 개혁일 수는 없다.

게다가 인재 유입은커녕 유출만 심해지고 있다. 공직자들은 보신에 급급하고 노동 개혁이나 규제 개혁 등 핵심 개혁에는 ‘식은 밥’만 늘고 있다. 그 대신 세금 쓰는 복지에는 과감하다. 복지 확충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초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라면 알뜰히 써야 하고 늘리더라도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현 정부의 씀씀이는 미래 세대를 위해 재정 적자를 급격히 늘리지 않는다는 역대 정부들의 금도를 넘고 있다. 일본으로 가는 징후는 너무 많고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로 가는 징후는 너무 적다는 것이 2019년 연말에 본 대한민국의 스산한 풍경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비교해보면 역사의 갈림길에서 지혜로운 전략과 그것을 구현할 담대한 용기를 가진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베네수엘라의 1950년 국민소득은 7400달러로 당시 세계 4위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석유를 팔아 횡재한 베네수엘라가 그 힘으로 산업을 육성했다면 오늘날 대학생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나라가 될 수는 없다.

덩샤오핑이 흑묘백묘를 들고 과감한 대전환을 하지 않았다면 1980년 국민소득 220달러의 나라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자 국민소득 1만 달러의 나라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80년대 초 침체에 빠진 이스라엘을 창업국가로 대전환한 시몬 페레스의 담대한 리더십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만들었다. 1999년에 국민소득 3만3000달러였던 독일이 2002년 2만6000달러로 추락했을 때 슈뢰더의 노동 개혁은 독일을 국민소득 5만 달러 국가로 재도약시킨 단비였다. 2008년 4만3000달러였던 국민소득이 10년간 4만1000달러로 게걸음하자 프랑스의 마크롱이 노동과 연금 개혁에 열중하는 이유도 쇠락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런 리더십을 갈망한다. 여야를 넘어서 시대를 통찰하는 생각의 힘과 그를 실현할 담대한 용기를 가진 리더십, 그 전조라도 볼 수 있는 2020년이길 고대한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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