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헤어나기 힘든 늪과 같아
노숙하고 쪽방·시설 떠도는 생활


서울역 인근 한 고시원에 묘한 활기가 돌았다. 고시원 원장이 모습을 드러내니 거주자들이 꾸긴 5만원 지폐 네댓 장을 건네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달력을 보니 20일이다. “여기 사는 사람 열 명 중 네 명은 수급자라서….” 고시원장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 짧게 말한다. 수급비가 지급되는 매달 20일이면 근처 대부분 고시원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방값을 건네는 부산함이 끝나자 곧 적막이 내려앉았다. 거주자들은 이미 제 방으로 흩어졌다. 지난 9월 숨진 채 발견된 차두석(가명·61)씨의 마지막 거처 모습이다.

무연고 사망자 차씨의 인생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건 차씨와 닮은꼴 인생들이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던 그와 같은 처지의 이웃들은 그가 죽었던 곳에서 생전 모습 그대로를 반복하고 있었다. 무연고 사망으로 생긴 빈자리는 금방 또 다른 무연고자들로 채워졌다. 빈곤은 줄지 않는 늪과 같았다.


무연고자가 떠난 자리에 남은 사람들

차씨는 고시원에 오기 전 7~8년을 쪽방촌에서 살았다. 그곳에 살면서 담뱃값이라도 벌 참으로 인력사무소를 다녔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차씨가 살던 쪽방촌에 찾아가자 “같이 인력사무소에 자주 갔었다”며 그를 기억하는 주민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그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차씨의 생전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무연고로 돌아가신 분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는 말에 금방 몇몇이 모였다. “서울역에는 설이나 추석이 되면 선물 들고 가족들 만나러 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여기선 그 꼴 보기 싫어서 다들 나가질 않아.”(A씨)

“워낙 많이 죽으니까 동네에서 안 보이면 문 두들겨보고 소리 없으면 문을 열어봐요. 여름에는 바깥으로 벌레가 보이니까 그거 보고 알 수 있는데, 겨울에는 벌레가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지.”(B씨)

강봉익(가명)씨도 “내 앞집 살던 분이 그렇게 가셨다”며 말을 붙였다. 그의 앞집에 살던 백강수(가명·62)씨는 폐렴으로 지난 9월 세상을 떠났다. 강씨는 지난여름 백씨의 병원 입·퇴원을 챙기며 병원비 보증을 서줬다고 했다. 하지만 백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 앞에 남은 병원비 70만원은 고스란히 강씨에게 떨어졌다. 이들도 대부분 죽었을 때 연락할 이 하나 없는 무연고자다.

“돈을 많이 벌면 내버리겠는데, 내가 지금 한 달에 버는 돈이 70만원이에요. 수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나이 60 다 돼서 갈 데도 없어요. 차라리 징역 사는 게 낫지.”

망자가 떠난 자리는 비슷한 처지의 ‘신입’이 채웠다. 백씨가 죽은 쪽방과 차씨가 떠난 고시원 방에는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 월세 25만원을 내고 차씨의 방에 들어왔다는 새 거주자의 짐은 검은색 옷가지 몇 벌과 먹다 남은 강냉이 한 봉지 정도였다. “차씨가 남긴 짐과 별 차이가 없어요. 짧게 살다 나가시고, 혼자 사시니까 짐이랄 게 거의 없죠.” 고시원장이 말했다.



가난한 사람은 줄지 않는다

고시원과 쪽방에는 차씨처럼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았다. 수급을 받으면 시설 입소는 불가능하다. 이들이 받을 수 있는 한 달 주거급여는 많아야 23만원(서울 기준)이다. 월세가 20만~30만원 사이인 ‘밑바닥’ 주거지에 빈곤자들이 모여 사는 광경은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그들의 삶은 모두 비슷했다. 수급비 인생에 빠지면 벗어나질 못했다. 고시원 관계자들은 “수급받은 만큼만 사셨다”고 입을 모았다.

“길송호(가명·61)씨는 수급자이시니까 일은 안 하시고 그 한도 내에서만 살다 가셨어요. 그분은 ‘기초생활수급 71만원짜리’였어요. 그거 타서 30만원 방세 주시고 하루에 1만원씩 딱 맞춰 사시는 거죠.”(M고시원장)

“수급비 받으시면 우선 방세부터 내시고. 그러고 대부분은 일주일이면 돈을 다 쓰시는 것 같아요. 그러고서는 고시원에서 주는 밥이랑 김치 드시고 그러는 거죠.”(H고시원장)

고시원 원장들의 말에서 깊은 무력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사는 곳에서 무연고 사망은 무덤덤한 일이었다.

빈곤한 무연에 빠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무연고 사망자의 주소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는 노숙과 쪽방·시설살이를 번갈아 한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쪽방에 주소지만 걸쳐놓고 밖에서 잤다는 사람도 있었다. 노숙인과 고시원·여인숙 거주자를 완전히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24일 “사실상 이들까지 모두 홈리스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통계의 빈 곳으로 이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4년 4535명이었던 노숙인(거리 및 시설)은 지난해 3478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노숙하다 사망한 사람들과 고시원·여인숙·찜질방 등에 사는 임시 거주자들이 모두 빠져있다. 거리 노숙인 숫자는 같은 기간 776명, 731명으로 큰 변동이 없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숙인을 줄이려고 노력해도 일정 규모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며 “경제적 상황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새로 유입되는 사람이 매년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무연고자들은 빈곤에 곧 익숙해진다. 김영범 한림대 고령사회연구소 교수는 “개인이 이런 상태까지 오는 동안 일을 너무 오래 쉬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 등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며 “일종의 낙인이 찍혀서 채용되기 어려운 측면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무연고 사망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빈곤에 대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 교수는 “현재 사회복지서비스는 생계유지에 치중돼 있지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식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지금 제도는 수급에만 맞춰져 있다 보니 탈빈곤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임주언 김판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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