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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알이를 수어로 했어요, 저는 ‘코다’입니다”

청인 자녀의 삶 그린 ‘우리는 코다입니다’ 공동 저자 이현화씨 인터뷰

농인의 청인 자녀를 뜻하는 ‘코다(CODA)’ 이현화 국립국어원 주무관이 지난 20일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이현화(33)씨는 옹알이를 수어(手語·수화)로 했다고 한다. 청인(聽人·청각장애가 없는 사람)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말을 따라하려고 ‘부부’ ‘버버’ 소리를 내듯, 현화씨는 농인(聾人·청각장애인) 부모의 수어를 따라하려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현화씨의 엄마는 딸이 음성 말을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돼 매일 바깥으로 나가 소리를 들려줬다고 한다. 그렇게 수어와 음성언어를 모두 익힌 그는 자연스럽게 농인 부모와 청인 사회의 연결 고리가 돼갔다.

“두 살 때부터 밖에 누가 문을 두드리면 엄마 어깨를 톡톡 쳤다고 해요.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의 삶이 시작된 거죠.” 지난 20일 서울 강서구 한 카페에서 만난 현화씨가 말했다.

현화씨는 지난달 말 발간돼 농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는 코다입니다’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이다. 언어학자인 그는 국립국어원에서 수어사전을 편찬하고 있다. 현화씨는 “2015년에 발간된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 이어 코다의 이야기를 공식 기록한 두 번째 책”이라며 “‘다름’을 향한 차별을 알리기 위한 한 걸음”이라고 말했다. 코다는 국내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영국 등에선 많은 코다들이 코다 단체를 꾸리고 활동하고 있다.

현화씨는 “어렸을 적 청인과 농인 사이의 경계선에서 받은 차별과 상처가 너무 커서인지 책을 쓰려고 보니 과거 기억이 잘 안 나서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현화씨는 농교육(농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가난했던 부모의 입과 귀가 돼야했다. 초등학생 때에는 보증금을 못내 가족이 집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길 위에 쌓여있는 짐을 보면서 엉엉 울었어요. 그러면서도 얼마를 내면 짐을 맡길 수 있는지, 돈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등 주변 어른들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엄마 아빠에게 전달해줘야 했죠.”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전하면서 현화씨는 ‘어른 아이’가 됐다. 일용직 아빠가 몸이 다쳐 병원에 실려 갔을 때에도 어려운 의사의 말을 엄마 아빠에게 전달해주는 건 어린 현화씨의 몫이었다.

현화씨는 학창시절을 청인도, 농인도 아닌 경계선에서 한없이 외로워하며 보냈다. 청인 사회는 그의 가족을 ‘귀머거리 부부와 어리고 불쌍한 딸’이라고 비난하거나 동정했다. 그렇다고 농인 사회에 편입될 수도 없었다. 현화씨는 “세상의 수많은 말이 어린 가슴에 비수가 돼 꽂혔지만,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에겐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말로 순화해 수어로 통역해줘야 했다”고 말했다. “저를 ‘어른 아이’로 만든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해갔죠.”

그는 5년 전 미국 출장에서 우연찮게 ‘코다’의 존재를 알고 완전히 바뀌었다. 현화씨는 “내가 알기론 다른 장애인들의 자녀를 칭하는 용어는 없지만 농인들의 청인 자녀를 칭하는 용어가 있었다. 그만큼 코다들만이 겪은 상처와 경험, 나아가 정체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화씨는 한국에 돌아가 ‘코다 코리아’를 만들고 다른 코다들을 만났다. 그는 “농인의 피가 흐르고 엄마 아빠를 사랑하면서도 그들을 원망하는, 서로의 경험을 얘기하자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현화씨는 코다의 정체성을 찾고 나자 ‘무엇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됐다.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청인 중심의 편견’이 문제였어요. 장애인지원 정책, 교육 정책 등 대부분의 제도, 사고방식이 농인을 ‘비정상’으로 보고 농인과 자녀들을 ‘정상’에 편입시키는 데 몰두하고 있는 거죠.”

이런 문화 속에서 자란 코다들은 부모가 가진 농문화(수어 등 농인의 고유한 생활문화)를 ‘후지다’고 평가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편견은 농인들에게 청인의 음성언어를 강요하는 문화다. 현화씨는 “태생적으로 음성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는 농인들은 언어구조 자체가 달라서 한국어, 음성언어를 배우기 힘들다. 청인들이 학교에서 10년을 넘게 영어를 배워도 유창하게 잘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하며 한국수어를 대한민국 공식언어로서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으로 인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화씨는 “그럼에도 병원, 은행 등 큰 기관에서조차 농인들은 통역사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지하철에는 광고를 위한 화면이 있는데도 긴급 방송이나 알림 방송을 수어로 안내해주는 시스템이 없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사례는 농인학교 선생님 다수가 수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부 등 정부가 특수교육 체계를 너무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라며 “한국어를 모르는 농인 학생들이 칠판에 적힌 한국어를 보며 언어를 배우고 있는 게 지금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현화씨는 코다를 알리는 일이 곧 ‘다양성’을 알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며칠 전 책 사인회에서 만났던 청인 중년남성 A씨가 ‘요새 수어를 배우고 있다. 책이 제 얘기와 많이 비슷했다”고 했어요. 남성이고 기성세대여서 상식적으론 ‘기득권층’에 속하는 분이 왜 공감을 했나, 처음엔 이해가 안 갔어요”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A씨는 최근 사업에 실패해 이른바 ‘사회의 주류’에서 탈락했다는 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A씨 외에도 농인과 코다를 잘 몰랐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공감을 표했다. 현화씨는 “결국 경계선에 놓여있는 지점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며 “‘내 안에 있는 소수자성’을 모두 파악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장애인과 장애인의 자녀여서 소수자인 게 아니에요.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지만 단지 지금 상황에서 그게 잘 드러나는지 아닌지가 차이 날 뿐입니다.”

현화씨는 코다 인터내셔널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미국인 수경 이삭슨의 특별기고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나는 다르지만 틀리진 않다. 나는 농문화에서도 풍요롭고 청문화에서도 풍요롭다. 미국 문화에서도 자유롭고 한국 문화로도 채워진다. 그것이 나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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