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새해에는 여섯 살 때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용호(75)씨는 6·25전쟁으로 전사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한 줌의 유해라도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이씨는 31일 “동네에서 이름난 목수였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일본에 끌려가셨다가 돌아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참전하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19년 10월 경기도 부천의 보건소에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유전자(DNA) 시료 채취를 한 그는 ‘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씨 아버지처럼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는 12만3000여명이다. 유가족들에게 6·25전쟁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에 따르면 6·25전쟁 국군 전사자는 13만7899명에 달한다. 김대중정부 때인 2000년부터 국유단이 본격적으로 유해발굴 작업을 시작했지만 아직 12만3000여명의 전사자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019년 11월까지 발굴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는 1만867구다. 전사자 발굴은 2008년 673구, 2009년 1143구, 2010년 1328구로 정점을 찍었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361구와 630구가 발굴됐다.

2018년 1월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전격 선언한 뒤 남북 관계가 급진전되자 유해발굴 사업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높아졌다. 남북은 지난 9월 19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9·19 군사합의)를 통해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공동 유해발굴을 실시키로 합의했다.

당초 계획은 남북이 지난 4월부터 함께 발굴에 나서는 것이었으나 북측이 이를 협의하기 위한 남측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서 남측만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북한은 한국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한국군 당국은 새해에도 DMZ에서의 유해발굴 작업을 계속한다는 계획이지만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북한은 DMZ 내에서의 남측 단독 유해발굴 작업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남북 관계 변화에 따라 태도 변화를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해선 접경지역 유해발굴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까지 진행된 1만여건 유해발굴 실적 가운데 절반 이상인 5704건이 강원도 지역에서 발굴됐다. 특히 접경지역인 양구군과 인제군, 철원군, 홍천군, 화천군에서 국군 전사자의 유해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이 발굴됐다. 만약 DMZ 내에서의 발굴이 계속 이어지고, 북측 지역에서도 발굴이 이뤄진다면 훨씬 많은 국군 전사자 유해가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유해발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유가족의 DNA 자료 확보다. 아무리 많은 유해를 발굴해도 DNA 자료가 없으면 신원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유해가 138구에 불과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유단 관계자는 “현재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 등록률은 30% 수준”이라며 “유가족들이 DNA 시료 채취에 적극 협력해준다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전사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차례 시료 채취 끝에 아버지 유해를 찾았던 김해수(75)씨는 “늦게나마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게 돼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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