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일처리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낼 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은 여러 가지가 있다. “왜 그렇게 했니” 하면서 따질 수도 있고 “기대에 못 미친다”거나 “실망스럽다”고 평가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어땠을까”라며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 된다. 어떤 조직이든 동료가 처리한 업무에 불만을 드러낼 때 우리는 통상 이 셋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사안을 따져가며 비판하거나, 기대치를 거론하며 평가하거나,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거나. 그렇게 해야 사적인 불만 표출이 아니라 공적인 문제제기가 될 수 있다. 비판과 평가와 대안 제시의 화법은 “그 일은 이렇게 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전제로 한다. 그런 목적의식 없이 일처리 수준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투덜거리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국회 필리버스터 와중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일처리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필리버스터란 게 원래 장시간 떠드는 일이니 아무 말 대잔치로 흐르기 십상이지만, 그가 선택한 어휘는 아무 말로 치부하기엔 너무 원색적이었다. 박 의원은 “대단히 서운하다. 대단히 섭섭하다”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연루된 가족 비리, 선거 개입, 감찰 중단에 대한 수사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했다. “윤 총장이 박근혜정부에서 좌천됐을 때 조 전 장관이 ‘좋은 검사가 사표 내게 해선 안 된다’ 했고, 그래서 내가 구구절절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윤석열 검사를 그렇게 지켰다.” 그런데 지금 검찰총장이 돼서 하는 걸 보니 서운하고 섭섭하다는 말이었다.

서운함과 섭섭함은 “그 일은 이렇게 됐어야 한다”는 공적인 기준을 전제한 표현이 아니다. 기업 이사회가 최고경영자에게 “올해 매출이 부진해 서운합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정부를 감시하는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향해 “국정 운영이 미흡해 섭섭합니다”라고 할 리도 없다. 이럴 땐 “실망했다”고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사감(私感)이 아닌 공적인 비판과 평가가 될 수 있다. 박 의원은 윤 총장을 향해 “실망했다” 대신 대놓고 “서운하다. 섭섭하다”고 말했다. ‘서운’과 ‘실망’의 뉘앙스 차이를 몰랐다면 무식한 것이고 알고도 그리 말했다면 뻔뻔한 것이다. 말의 내용부터 “너는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왜 우리를 공격하느냐”는 거였으니 후자에 훨씬 가깝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 단상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편 가르기를 하다니, 무척 실망스럽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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