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중학교 2학년생 A군은 밤새 게임하느라 늦게 일어나서 학교에 못 가기 일쑤였다. 학교에 가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조는 패턴을 반복했다. 부모가 게임을 못 하게 하자 A군은 PC게임에서 스마트폰게임으로 바꿔 몰래 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결국 A군은 부모 손에 이끌려 병원을 방문했다.

이상규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3일 “중독을 진단하는 요소 중 하나는 사회적 기능이 가능한지 여부”라며 “본인 스스로 컨트롤을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게임중독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A군처럼 게임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지만 이를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다.

의료계에선 게임을 하는 청소년 중 2% 정도가 중독 수준인 것으로 추정한다.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대체로 부모 통제에서 벗어나는 중학생 때다. 그러나 게임에 노출되는 나이는 이보다 훨씬 어린 3~4살이고 5~6살 정도가 되면 직접 게임을 한다. 게임중독의 발단이 미취학아동부터인 셈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등학교 1~3학년생 중 초등학교 입학 전에 게임을 시작했다고 답한 학생이 20% 안팎으로 가장 많다. 초등학교 4~6학년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3%를 넘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진흥원은 “학생들의 게임 시작 시기가 저연령화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게임중독 고위험 집단을 의미하는 ‘과몰입군’과 중독 가능성이 있는 ‘과몰입위험군’에선 미취학아동 때 게임을 시작한 비율이 눈에 띄게 높다. 초등학교 4학년 중 게임 이용에 특별한 문제를 보이지 않는 ‘일반사용자군’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 전 게임을 시작한 비율이 28.3%인데 과몰입군과 과몰입위험군에선 각각 41.5%, 43.6%를 기록했다.

어릴 때 뽀로로와 같은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게임으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유튜브에서 어린이 게임 ‘로블록스’ 등을 인기 유튜버가 중계하는 영상이 조회수 700만에 달한다.

그러다가 점점 수위가 높은 게임을 찾는다.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은 “뇌에 일정한 자극을 계속 주면 늘어났던 도파민 분비량이 줄어들어 이 분비량을 다시 늘리기 위해 더 자극적인 걸 찾게 된다”고 말했다. ‘신비아파트-고스트헌터’의 경우 귀신 그림이 적나라해 12세 이용가임에도 유치원생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커뮤니티에 “아이가 신비아파트를 보고 잠을 못 잔다”는 글이 많지만, 괜히 못 보게 했다가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될까 봐 부모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게임중독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월 질병으로 규정하면서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도입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 7월 민관협의체를 출범, 12월까지 5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지난 12월 20일 5차 회의에선 정부 차원의 첫 실태조사가 결정됐다. 협의체는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용역을 발주해 새해 실태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국내 게임중독 진단군의 규모와 특성, 치료현황 등을 파악해 질병코드 도입 설계 시 참고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게임중독의 과학적 근거와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산업, 문화, 교육, 보건의료계의 파급효과도 함께 분석한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선 여전히 찬반이 팽팽하다. 협의체가 11월 5일 진행한 질병코드 도입 찬성 간담회에 참석했던 백형태 메티스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은 “하루 1명꼴로, 이제는 초등학교 2~3학년생까지 중독 증세로 방문한다”며 “이들 중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와 같은 증상을 동반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게임중독 질병코드가 없어 보험 적용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백 원장은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진료하기 위해 질병코드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반면 11월 19일 질병코드 도입 반대 간담회에 참석한 이승훈 영산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는 “게임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고 불행하다고 했을 때 과연 게임을 안 하면 성적이 오르고 행복해질까 하는 부분에서 인과관계가 미흡하다”며 “게임중독으로 진단된 아이들에게 다른 심리적 요인이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은 아이들 사이에 자리 잡은 놀이문화”라며 “질병코드 도입을 논하기 전에 문화적 측면에서 게임을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부처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건강을 담당하는 복지부는 찬성인데, 문화산업을 담당하는 문체부는 반대다. 문체부는 지난 4월 게임중독의 질병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내용의 공식 의견서를 WHO에 별도로 제출했다. 문체부는 의견서에 “게임중독에 대한 진단과 증상에 대한 보고가 전 세계, 전 연령층에 걸친 게 아니라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국한돼있고 청소년이라는 특정 연령층에 집중돼있다”며 국내 연구 결과에 대한 문제 제기도 포함했다.

이에 대해 이상규 교수는 “알코올중독이나 도박중독도 술 마시고 도박한다고 무조건 중독으로 진단하는 게 아니다”며 “명확한 진단 기준을 갖고 치료적 접근을 하는 것이어서 인과관계가 약하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청소년 때 게임중독을 막지 못하면 성인까지 이어지고 이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되도록 중학생 이하에서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의 질병코드 도입 권고는 오는 2022년 1월 발효된다. 이를 우리나라에 도입하려면 5년마다 개정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바꿔야 하므로 다음 개정 시기인 2025년 도입해 2026년부터 시행 가능하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