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시리즈 2019’ 작가로 선정된 박찬경씨가 최근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병풍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이처럼 기성품도 과감하게 작품처럼 전시하는데, 성서 장면을 동양적 장정 형식에 담은 ‘성서 병풍’은 서구 추종적인 우리 미술제도를 비판한 전시 콘셉트와 맞아떨어진다. 최현규 기자

박찬경(55) 작가는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인 남북문제를 주로 영상 작품으로 다뤄왔다. 그가 50대 이상 중견 작가를 대상으로 한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9’ 후원 작가에 선정됐을 때도 그런 연장선에서 일종의 ‘자기 복제’를 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기우였다. 전시 문법을 새롭게 보여줬다고 할 만큼 ‘낭중지추’의 실력을 드러냈다. 그를 전시장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최근 만났다.

그는 “두 가지를 염두에 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는 게 뭘 의미하는 걸까. 즉, 우리의 미술 제도를 반성적으로 보자는 것이 한 축이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세월호 참사 등 재난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미술가가 뭘 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이 또 다른 축”이라고 했다.

전시장 들머리엔 대나무 의자에서 잠을 자는 도사를 그린 옛 중국 그림이 전시를 읽는 복선처럼 걸려 있다. 옆에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한 구절이 적혀 있다. 연암이 중국 베이징의 성당에서 본 성화에 대한 감동을 쓴 것인데, 서양화의 입체법의 특성을 간파하며 그림 속 시선이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쓴 내용이다.

말하자면 두 장면은 우리나라 미술 제도가 서구 추종 일변도였음을 반성하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미술사에서 가져온 자료 사진, 고물상에서 수집한 민화 병풍 등을 전시장에 가져와 우리 전통 속에 이미 훌륭한 미술문화가 존재했음을 웅변한다.

놀라운 것은 회랑, 마당, 처마, 주련(기둥에 세로로 쓴 글씨) 등 전통 가옥의 형식을 전시장 디스플레이에 도입한 것이다. 특히 마당은 주제를 시사하는 동시에 전시 동선을 미술관 비판에서 재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옮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전시장 한가운데 마당 코너에는 콘크리트로 바다 무늬를 새긴 작품 ‘해인(海印)’이 깔려 있고, 주변에는 평상과 병풍이 놓여 있다. 그는 “콘크리트 미장이들이 흙손으로 조각을 하는 것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바다의 무덤 같은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없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제목은 ‘모임’이다. 작가는 “대부분 모임이 이념이나 취향, 이익 동기에 따라 이뤄진다. 이런 걸 배제한 순수한 모임이야말로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에 공동체가 위기에 대처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모임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이곳 마당에서 릴레이 강연 행사가 이뤄졌다.

작품 ‘해인’이 암시하는 재난 서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55분짜리 흑백 영상작품 ‘늦게 온 보살’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동선 구조를 취했다. 일본과 인도에서 핵실험 제목을 불교에서 가져온 것에 착안한 이 작품은 흑백이 거꾸로 된 네거티브 영상이어서 핵 위협에 대한 묵시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박찬경은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으로 석사는 미국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귀국 후에는 작가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비평 작업과 함께 전시 기획자로도 일했다. 2014 미디어시티서울비엔날레에서 ‘귀신 간첩 할머니’를 주제로 예술감독을 맡기도 하는 등 미술계의 르네상스인이다.

그래선지 이번 전시에선 작가이자 감독 역할을 한 것 같다. 새로운 작가상을 제시한 이 전시를 두고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동시대 미술은 작가가 큐레이터처럼 작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술에 대한 자기반성적 작업이 많다 보니…. 미술에서 작가가 표현만 하는 시대는 지났지요.”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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