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약속… 최소한의 규칙 허물지 않는 개혁이어야

3% 성장을 자신했던 한국 경제가 2%도 불안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2.4% 성장을 예측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한국 경제가 힘들었던 건 성장 먹거리의 실종 때문이었다. 반도체 수출에만 의존한 경제는 관련 분야가 흔들리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과거에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서로의 부진을 보완했지만, 지난 몇 년간은 모두 함께 위기를 겪는 최악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나라에서 기존 제조업은 성장 먹거리로서 한계를 보인다.

그래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게 혁신이다. 4차 산업혁명이며, 새로운 물결이다. 기존 제조업을 보완할 새로운 성장 먹거리를 발굴하는 일이다. 생명이 다해가는 기존 제조업도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 먹거리로 재탄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규제’다. 낡은 규칙이 새로운 산업의 출발을 가로막으면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정부에서 규제는 ‘암 덩어리’에 빗대어지기도 했다. 현 정부도 과감한 규제 개혁을 외치고 있다. 현장에서 번뜩이는 구상들은 얽히고설킨 규제에 묶여 없어지고 있다. 기술과 사회가 빠르게 바뀌면 규칙도 당연히 발을 맞춰야 한다. 한국 경제가 다시 도약하려면 규제 개혁이 절실하다.

다만 규칙의 변화는 몇 가지 부분에서 신중해야 한다. 규제는 무조건 ‘악(惡)’이며, 혁신은 무조건 ‘선(善)’이라는 극단적 이분법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규제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 또한 위험하다는 얘기다. ‘규제의 변명’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규제는 낡고 귀찮은 규칙 같지만, 사실 저마다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한 사회가 오랜 경험을 축적해 만든 일종의 약속이다. 사회가 이런 약속을 정한 이유는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알고 보면 규제의 최종 역할은 보호인 셈이다.

따라서 규제를 없애려면 본연의 ‘보호’ 역할도 고려해야 한다. 이 규제가 보호하던 부분을 새로운 기술이 대신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규칙을 없애거나 변경해도 된다. 규제가 해왔던 보호의 기능이 공백 상태가 된다면 개혁을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 대안이 따라와야 한다. 개혁할 때 해당 규제가 만들어진 이유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낙오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혁신의 다른 이름은 파괴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기존 시장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 개혁이 병행되면 기존 시장 종사자들의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피해를 보는 이들을 혁신에 따르지 못하는 낙오자로 치부할 수 없다. 혁신과 규제 개혁은 시장에서 내몰리는 이들을 보호하는 방안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규제 개혁은 재산권, 노동자 권리 등 최소한의 규칙은 허물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무너트리는 행위가 ‘혁신’과 ‘규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기본권은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을 원하는 기업가들도 고민이 필요하다. 혁신은 생산성을 높이고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나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배달시장’ ‘운송시장’ 등의 혁신은 기존 시장에서 조금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 이런 서비스 혁신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보다 기존 시장에서의 영역 뺏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이 혁신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에게 조금 더 편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새로운 성장 먹거리가 될 만큼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이 혁신을 핑계로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기업가들 스스로 기존 규칙을 어겨도 되는 특권을 요구할 만큼 혁신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올 한 해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가들 입에서도 규제 완화보다는 규제 합리화라는 말이 나왔으면 한다. ‘규제 때문에 모든 것이 안 된다’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규제와 혁신을 반대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뒤섞는 게 지혜다. 규제는 무조건 없애야 할 것도 아니고, 무조건 유지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똑똑한 유연함이 필요하다. 그래야 한국 경제가 진정한 성장 먹거리를 찾을 수 있다.

전슬기 경제부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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