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만큼 중요한 21대 총선 오만하면 앞서다가도 패배
보수 통합 없이 승리한다거나 독자생존 가능하다는 건 환상
야권 통합 없으면 혁신도 없고 정권 심판도 없을 것


2020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총선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나라의 진로는 대선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대선이 총선보다는 더 큰 파장을 갖는다. 그런데 대선만큼이나 나라의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총선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9대 총선과 12대 총선이다. 9대 총선은 1978년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내연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선거 결과 당시 제1야당이던 신민당이 집권당보다 1.1% 득표를 더 했다. 유신체제에 대한 민심의 향배가 결정된 선거였다. 이것이 결국 YH 사건과 부마항쟁, 그리고 10·26으로 이어지는 유신체제의 종말로 귀결되었다. 12대 총선은 5공 정권 중인 85년에 치러졌고, 여기서 YS와 DJ가 힘을 합쳐 신당 돌풍을 일으키고 결국 기존 제1야당을 와해시켜 103석의 강력한 야당을 등장시켰다. 이것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1대 총선도 대선만큼 중요한 총선의 범주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총선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의 갈 길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20년 집권의 첫 디딤돌로 이번 총선을 규정한다. 반대로 야당은 정치적 재기와 더불어 대한민국이 좌향좌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는 선거다.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고,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이 치명상을 입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선거다. 따라서 여야가 모두 정치적 승리를 위해 쓸 수 있는 전략과 자원은 다 동원할 수밖에 없다.

신년 초 모든 여론조사는 여당이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 지지율은 50% 선까지 회복되었고,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은 조사에 따라 10% 포인트에서 25% 포인트까지 격차를 보인다. 게다가 여당은 선거법 개정으로 우군들의 지원체제를 단단히 확보했다. 정치공학적 차원의 선거 전략에서도 기동전과 진지전, 공중전과 지상전 모두에서 여당은 프로의 모습을, 야당은 아마추어의 모습을 노정하고 있다. 제1야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너무 높은 것도 기울어진 운동장의 풍경이다. 야당은 정권의 실정에 대한 비판과 분노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구도와 전략에서 밀리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역대 총선에서 3~4개월 전 전망이 적중한 예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15대 총선에서 당시 대통령 인기가 추락해 신한국당이 패배할 것이라 했지만 공천 혁신에 성공한 여당이 의외로 선전했다. DJ 정권 하 16대 총선도 여당 승리를 예측한 출구조사마저 뒤집혀 조사기관들이 사과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17, 18, 19, 20대도 모두 총선 3개월 전 예측과 결과는 판이했다. 이렇게 선거 예측과 결과가 빗나간 이유는 동전의 양면 같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유리한 쪽에서 오만을 보였고, 불리한 쪽에서는 혁신을 도모했다는 점이다. 골프와 선거에서는 머리를 쳐들면 망한다.

이런 예는 여당보다 자유한국당에 ‘뼈아픈 추억’들이 많다. 2004년 노무현 정부의 국정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지고 당시 한나라당은 공천까지 혁신해 야당의 승리가 점쳐졌다. 그런데 무리한 탄핵으로 국민은 정권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야당을 심판했다. 2007년 대선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도 여당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공천 무리수로 선거 결과는 기대 이하였고, 이명박 정부는 여권 분열이라는 정치적 멍에를 짊어졌다. 20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은 크게 유리했던 선거 판세를 공천 파동을 일으켜 골대 앞에서 넘어졌다. 탄핵의 정치적 환경도 그때 조성됐다.

선거 표심은 얼마든지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 정권심판론은 언제든지 정권지지론으로 바뀔 수 있다. 비호감도가 높은 야당이라도 변화를 잘 보여주면 정권심판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야당이 이 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최선을 상징하는 용어가 통합과 혁신이다. 통합은 최적의 선거 구도를 조성하려는 노력이고, 혁신은 기득권과 구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이 둘은 연계되어 있다. 통합의 과정에서 혁신을 담아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일부와 보수 일각에서 통합 없이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영남 정서와 강경 우파의 함성만을 민심으로 보는 어리석은 일이다. 전체 의석의 60% 이상을 결정하는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다. 지역과 이념이 가장 중요한 변수인 한국의 선거 지형에서 기본 지지층을 갖지 못한 새로운 보수당이나 안철수계가 독자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역시 환상이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한 이유는 호남 지역 기반 때문인데, 지금은 호남과 영남 양쪽에서 거대 정당의 지지가 너무 견고하다. 새로운보수당의 개혁에 대한 열망, 젊은 보수에 대한 소구력을 보수 전체의 혁신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도 통합은 필수적이다. 물론 이를 위해 큰 정당에서 더 열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통합 없이 혁신도 없고, 정권 심판도 없다.

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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