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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100년 전 대립의 데자뷔

민세진 (동국대 교수·경제학과)


100년 전 시작된 1920년대는 미국에서 흔히 ‘광란의 20년대’로 불린다. 같은 시기 유럽은 ‘황금시대 20년대’란 별칭이 붙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복구 과정에서 찾아온 경제부흥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그려졌듯이 사치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그래서 도덕에 무관심한 듯 보이는 시대였다. 하지만 물질적 성장과 풍요의 이면에는 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불안, 허무가 어둡게 깔려 있었다.

미국에서 정치적 대립이나 사회적 불안은 대표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로 부각됐다. 1917년부터 시작된 러시아혁명으로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이 탄생하고 황제 일가가 처형되면서 미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공포가 되었다. 1919년 일련의 노동조합 파업에 무정부주의자들의 폭탄테러까지 일어나자 불안감이 극에 달했고, 그 결과 당시 법무장관 미첼 팔머는 두 차례 급습을 통해 수천명의 ‘극단주의자’들을 체포했다. 그중 수백명은 미국에서 추방되었다. 1920년이 되자마자 1월에는 뉴욕주 의회에서 사회주의당 소속 5명의 의원을 정직시키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들은 결국 의회에서 제명된다. 이 와중에 노동장관은 팔머의 집행에 위법성이 다분하다고 비판하고, 유력 정치인 중에는 사회주의자를 의회에서 축출하는 것은 그들이 폭력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을 정당화할 빌미를 제공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언론과 여론은 그렇게 해서라도 공포를 몰아내고 싶어 했다.

비교적 단합된 모습을 보인 미국과 달리 직접 전쟁을 겪은 유럽에서는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양한 이념이 각축을 벌였고, 그중에는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같은 극우파도 있었다. 자유주의 관점에서 보면 극좌나 극우 모두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사상이지만 국내 경제 상황이 어려운 국가일수록 강력한 국가를 향한 돌파구가 절실했던 것이다. 1920년대는 이렇게 미국의 혼란과 유럽의 혼란 중 어느 쪽이 더 나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변의 시대였다. 다만 당시 미국 문인들 가운데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스콧 피츠제럴드 등이 미국의 물질주의와 미국에 갇혀 있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참지 못하고 주로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며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 불렸다는 사실에서 지향점을 잃은 경제적 번영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다.

100년이 지나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대한민국의 2020년은 물질적 성장에 대한 기대나 조짐이 전혀 없이 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불안만 가득한 채 시작되었다. 그런데 곰곰이 짚어보면 이러한 대립과 불안은 성장엔진이 식으면서 날카로워졌다. 유럽의 경험에 비춰볼 때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약할수록 극단적 가치관에 쏠릴 가능성이 컸다. 패전에 따른 전쟁배상금에 짓눌렸던 독일이 대표적이다. 우리 사회가 양분되어 극한 대립에 처한 원인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 희망이 미미한 것이 크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성장의 불씨는 위태롭게 하고 나눠 먹는 논의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고위직이나 노동자나 크든 작든 기득권은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모든 명분을 동원해 자기 몫을 키우려고 한다.

성장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정치와 정책이 할 일이다. 물론 과거 고도성장 시기에는 없었던 정신적 가치가 동반돼야 할 것이다. 윤리적 소비, 자연과의 조화, 인류애의 발휘 등 물질적 성장과 함께 정신적 풍요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저출산 같은 사회적 문제들도 상당 부분 저절로 완화되지 않을까. 성장하려면 시장이 활발히 작동하고, 능력 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마음껏 기회를 찾아 벌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의 걸림돌을 치우고 성장을 해야 분배도 지속 가능하다.

광란의 20년대는 1929년 대공황으로 막을 내렸다. 우울하게 시작한 우리의 20년대는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첫 단추를 잘 끼워보자.

민세진 (동국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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