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 대신 포도즙… 풍요로워진 ‘성스러운 만찬’

2020년 달라진 유아 성찬 풍경

인천의 한 교회 유치부 학생이 2018년 성찬식에 참여해 목사에게 빵을 받고 있다. 국민일보DB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는 지난 5일 새해 첫 주일예배 성찬식 때 평소 사용하던 성찬용 포도주를 포도즙으로 바꿨다. 지난해까지는 알코올이 소량 들어있는 성찬주를 사용해 왔지만, 성찬에 참여하게 될 유아들을 배려해 포도즙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이 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가 지난해 9월 열린 104회 교단 정기총회에서 유아세례만 받은 유아에게도 성찬 참여의 기회를 주기로 한 데 따른 조치였다. 예장통합 총회는 전국 노회에 헌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물은 뒤 지난달 19일 공포했다.

예장통합은 이전까지 유아세례를 받았다 해도 입교 전에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게 했다. 입교는 유아세례를 받은 교인이 만 13~15세가 됐을 때 당회가 실시하는 문답에 참여해 신앙고백을 하는 과정을 말한다. 유아세례 때 부모가 대신했던 신앙고백을 자신의 고백으로 전환한다는 의미가 있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다.(마 26:26∼30, 막 14:22∼26, 눅 22:17∼20) 누가복음 22장 19절에는 “또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기록돼 있다. 성찬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인을 연결하는 신앙적 교제인 셈이다. 유아도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봤을 때 입교 전이라도 성찬에 참여할 권리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대한성공회 기독교한국루터회는 앞서 유아 성찬을 허락했다. 미국장로교(PCUSA)도 1983년 북장로교와 남장로교가 통합하면서 만든 예배지침서에 유아 성찬을 허락하는 내용을 담았다. 스코틀랜드장로교도 92년부터 성찬 참여의 조건으로 입교를 명시했던 헌법 조항을 삭제했다.

전남 순천 금당동부교회 장철근 목사가 2017년 교회 본당에서 진행된 성찬식에서 유아에게 빵을 주고 있다. 국민일보DB

유아 성찬은 기독교 초기부터 실행돼 온 전통이다. 초대교회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유아 성찬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이해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앞선다는 성례전 신학을 유아 성찬에도 같이 적용해야 한다”면서 “유아처럼 전적으로 무력한 자에게 생명의 양식인 주님의 만찬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방정교회도 유아 성찬 전례를 단 한 번의 단절 없이 이어오고 있다.

논란이 시작된 건 1214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화체설’이 공인된 뒤였다. 화체설은 성찬 시 빵(떡)과 포도즙 등 성물이 사제의 축복으로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다. 로마 가톨릭은 이 전통을 따른다.

화체설은 성찬을 경직시켰다. 유아들이 성찬식 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흘릴 수 있다는 이유로 유아 성찬 참여가 금지됐다. 화체설 이후 유아 성찬 참여 금지 전통은 일부 개신교에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신교는 화체설 대신 기념설 교리를 채택한다. 성찬에 사용하는 성물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기념하며 성스러운 식사를 나누는 것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유아들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알코올이 포함된 포도주를 사용하던 교회들은 고민에 빠졌다. 예장통합의 경우 성찬식 때 포도즙을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대부분 교단도 비슷하다. 지역교회들은 형편에 따라 성찬용 포도주를 사거나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포도주스를 사용하는 교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 복음서에도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신다”고 돼 있다. 포도로 만든 음료면 포도주든 주스든 모두 가능하다고 풀이된다.

성찬주가 담긴 성찬잔의 모습. 국민일보DB

성찬주에 대한 고민은 미국교회가 먼저 했다. 미국의 감리교 목사이자 치과의사였던 토머스 웰치는 1869년 직접 성찬용 포도음료를 만들었다. 알코올이 없는 성찬용 음료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알코올 중독자에겐 미량의 알코올도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웰치 목사가 만든 성찬용 음료가 지금의 ‘웰치스 포도주스’가 됐다.

성물을 교인들이 함께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김명실 영남신대 교수는 8일 “교인들이 김장을 함께하듯 1년 동안 사용할 포도즙도 함께 만들면 성찬의 은혜가 더욱 커진다”면서 “성찬 떡이나 빵도 성미를 조금씩 모아 교회에서 만들자”고 권했다. 김 교수는 예장통합 유아 성찬위원회 책임연구자로 활동했다.

그는 “성물 준비와 성찬 참여가 결국 교회 공동체의 연대로 이어진다”면서 “성물을 함께 만드는 것이 성찬 신학의 의미를 살리는 지름길”이라 했다. 이어 “한국교회도 성찬 성물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장복 한일장신대 명예총장은 “단주 중이던 알코올 중독자가 알코올이 들어간 성찬주를 마신 뒤 다시 음주를 시작한 사례가 많다”면서 “알코올이 들어있는 포도주를 사용하는 교회가 있다면 성찬식 전 이를 한 번 끓여 알코올을 증발시킨 뒤 사용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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