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한 학자가 글리포세이트에 감염된 개구리 한 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자세히 보면 다리가 5개나 달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 학자는 아르헨티나의 시골에서 저렇듯 비정상적인 형태로 자란 개구리들을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 시대의창 제공

“우리는 지금 역사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틀 동안 벌어질 일들은 21세기 인류 역사에 명백한 흔적을 남길 것입니다.”

2016년 10월 1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이 재판은 한 변호사의 어기찬 신념이 묻어나는 연설로 시작됐다. 법정에는 400명 넘는 청중이 모였고 세계 곳곳에서 피해를 증언하기 위해 도착한 증인 24명과 재판관 5명도 앉아 있었다.

변호사의 연설이, 이틀간 법정에서 쏟아진 피해자들의 증언이 겨냥한 타깃은 세계 최대 농화학 기업인 몬산토였다. ‘몬산토 국제법정’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 행사는 매년 지구촌 곳곳에 80t 넘게 뿌려지는 제초제 속 물질 ‘글리포세이트’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불리는 몬산토는 글리포세이트가 담긴 제초제 ‘라운드업’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구역질 나는” 악행을 저질렀다.

가령 이 제초제 탓에 선천적 기형으로 고통받는 아이는 한두 명이 아니다. 첫 번째 증인으로 나선 한 여성은 경마장에 뿌린 제초제 탓에 기형아를 낳았다. 그의 아들은 식도가 위와 연결돼 있지 않은 ‘식도폐색증’으로 고통의 삶을 살고 있다. “(라운드업 TV 광고를 보면서) 이 제품을 사용해야겠구나 생각했지요. 이 제품이 제일 덜 유해한 제초제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땐,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지요.”

이뿐만이 아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라운드업 탓에 2000년대 초반부터 2만명 넘는 농부가 신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농촌 인구의 15%는 현재도 신장 질환을 앓고 있다. 1950년만 하더라도 프랑스 농지에는 1㏊에 2t의 지렁이가 살았지만 지금은 같은 면적에 서식하는 지렁이 규모가 200㎏ 수준밖에 안 된다. 미국에서는 자폐아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에도 몬산토의 제초제가 영향을 끼쳤다는 게 이 책 ‘에코사이드’의 주장이다.


이쯤 되면 ‘생태 학살’로 번역할 수 있는 책의 제목 ‘에코사이드(ecocide)’가 엉터리 작명이 아니라는 데 수긍하게 된다. 저자는 프랑스 저널리스트이자 ‘몬산토 국제법정’이 열리는 데 “대모” 역할을 맡아 든든한 뒷배가 돼줬던 마리 모니크 로뱅이다. 책은 법정 스케치에 저자가 그러모은 피해자와 전문가의 증언이 차례로 포개지는 구성을 띠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몬산토가 언론이나 학계를 상대로 펼친 복마전이다. 몬산토가 제초제의 폐해를 고발하는 학자들을 상대로 “꼭두각시 학자들”을 내세워 중상모략을 벌이고, 협박을 일삼은 행태는 기함할 정도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저서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통해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생산되지 않는 지식’과 ‘측정되지 않는 고통’의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명백한 증거다.

말미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희한한 시민 캠페인 ‘자발적 오줌싸개들’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캠페인 참가자들은 자신의 몸속 글리포세이트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소변 분석에 동참했다. 저자도 2017년 3월 프랑스인 29명과 함께 소변을 연구소에 보냈는데 30개 소변 샘플에서 전부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됐다. 저자는 “자발적 오줌싸개들은 업계의 과오를 고발하는 집단소송에 함께 나서는 것에 최종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며 “에코사이드를 읽은 한국의 독자들 역시 같은 행동에 나서주시길 요청한다”고 적어두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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