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90년쯤 인체의 혈액 순환 루트를 드러내기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다빈치는 인체를 최초로 해부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호기심이 많았던 다빈치조차도 인체 해부에 나서는 일엔 혐오감을 느꼈다고 한다. 까치 제공

소설가 정유정이 지난해 내놓은 장편 ‘진이, 지니’는 죽음을 앞두고 생과 사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누군가의 이야기였다. 작가는 30년 전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다가 이런 작품을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 어머니는 입원실과 중환자실을 수차례 오갔고, 돌아가시기 3일 전부터는 아예 의식이 없었다. 작가는 어머니가 마지막 사흘 동안 무의식의 세계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사투를 벌였을 것으로 여겼고, 이런 생각은 곧 ‘진이, 지니’의 근간이 되었다.

확실한 사실은 정유정의 이런 아이디어를 망상이라거나, 객쩍은 상상이라고 깎아내릴 순 없다는 것이다. 2014년 한 학회지에 실린 보고서를 보면 말기 질환자의 50~60%는 죽음을 앞두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강렬한 꿈을 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는 순간에는 뇌에서 화학 물질이 왈칵 분비된다는 주장도 있다. 즉, 정유정의 어머니 역시 의식을 잃은 마지막 3일 동안 꿈길을 거닐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어쩌면 어사무사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남편과 함께했던 그 옛날의 달콤한 순간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세상에 떠도는 믿기 힘든 임사체험과 관련된 이야기도 어쩌면 이런 꿈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인체, 수수께끼로 가득한 우주

이렇듯 독자의 마음을 한없이 까라지게 만드는 죽음과 관련된 스토리는 미국의 저술가 빌 브라이슨(69)이 발표한 ‘바디’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둡고 무거운 내용만 가득한 논픽션일까. 저자의 전작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누구도 그리 넘겨짚진 않을 것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바디’에는 인체의 신비를 다룬 명쾌하고 경쾌한 글이 빽빽하게 실려 있다.


이야기는 사람을 만드는 방법을 살피면서 시작한다. 인체 제작에 필요한 원소는 모두 59개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소는 산소로 인체의 61%를 차지한다(이것은 직관에 반하는 분석인데 산소가 인체의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음에도 우리가 풍선처럼 통통 튀지 않는 이유는 산소가 수소와 결합해 물의 형태를 이루고 있어서다). 산소를 제외하고 필요한 원소는 탄소 수소 질소 칼슘 인 등이다. 그렇다면 모든 기술을 갖췄다고 가정할 때 인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비는 얼마일까. 누군가는 그 비용이 1억4000만원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20만원 수준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되새겨봄 직한 포인트는 별것 아닌 원소(책에는 “쓰레기 더미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라고 적혀 있다)가 모여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생명의 신비로운 기적이다. 책에는 너무 희한해서 밑줄을 긋게 만들고 아주 인상적이어서 머리에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그중 몇 개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피부의 무게는 약 5~7㎏이다. 매년 약 500g의 피부가 비늘처럼 떨어진다. 청소기 속 먼지를 태우면 머리카락 타는 냄새와 비슷한데, 이유는 피부에서 떨어진 먼지와 머리카락을 이루는 물질이 비슷해서다.

②뇌의 피질 1㎣(모래알 크기)는 2000TB(테라바이트)의 정보를 저장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영화를 담을 수 있는 용량이다. 인간이 평생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것은 근거 없는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③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진짜 겨울잠’은 의식을 완전히 잃고 체온이 크게 떨어진 상태를 가리키는데, 곰의 겨울잠이란 행동이 둔해진 상태에 가깝다.

④하품은 피로와 관련이 없다. 지금까지 그 어떤 연구도 하품과 활력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하품을 가장 많이 하는 시간은 밤에 푹 자고 일어났을 때의 처음 2분 동안이다.

⑤남성은 7초마다 섹스 생각을 한다는 건 엉터리 주장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 대학생은 하루에 19번 섹스 생각을 했다. 깨어 있는 시간만 따지자면 1시간에 한 번꼴이었다.

자, 그렇다면 여기 등장한 ①~⑤번 가운데 당신은 몇 개나 알고 있었는가. 짐작건대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일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세상에 등장한 온갖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이처럼 기가 막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핵심은 인체가 미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많은 학자가 달려들었지만 인체는 의문투성이다. 가령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털이 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뇌는 유인원 시절보다 왜 작아졌는지, 혈액형은 왜 존재하며 잠을 자지 않으면 왜 위험한지, 남성 생식기에서 고환은 왜 바깥에 존재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런저런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인체 개론서

‘바디’는 모두 23개 챕터로 구성돼 있다. 피부 뇌 입 목 심장 뼈대 면역계 잠 신경 암 의학…. 챕터 하나하나를 떼어내 단행본으로 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각 챕터에 실린 정보량이 보통이 아니다. 여기에 갖가지 질병을 놓고 벌어진 인류사의 기구한 에피소드나 현대의학의 ‘현재’를 살필 수 있는 이야기까지 비중 있게 포함돼 있다. 저자는 이들 이야기를 저글링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주고받으면서 인체를 분석한 거대한 세밀화를 그려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지점은 저자의 필력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나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같은 전작이 그랬듯 곳곳에 유머를 가미하고, 데이터를 비틀어 새로운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만든다. 정보량이라는 양감, 문장력이라는 질감을 모두 갖춘 수작이다.

가령 심장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한 대목을 보자. 당신이 서 있다면 심장은 약 1.2m 아래에 있는 발에서도 피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관에 든 물을 1.2m 높이까지 밀어 올릴 수 있는 힘으로 자몽만 한 크기의 펌프를 세게 누른다고 상상해보라. 이제 그 일을 1초에 1번씩, 수십 년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하면서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상상해보라. …(심장이 가진 능력은) 정말로 놀라운 능력이다.”

서점가에는 이미 인체를 다룬 책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바디’의 가치를 깎아내릴 사람은 없을 성싶다. 그만큼 이 책은 독보적인 인체 개론서다. 마지막으로 다시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누군가는 죽은 뒤에도 머리카락과 손톱이 자란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가짜 뉴스다. 책에 담긴 내용에 따르면 인간이 죽은 뒤엔 인체에서는 그 무엇도 자라지 않는다. 화장을 하면 겨우 2㎏의 재만 남을 뿐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세상에 남기는 건 이게 전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가슴에 담아 두어야 할, 그리고 누구나 가장 확실히 알고 있을 인생의 진리일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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