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전북 군산시 개정면 통사리에 들어선 공공임대 아파트 ‘수페리체’ 건설현장이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3일 보증사고 공고를 한 뒤로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492가구의 입주예정자들은 기약 없는 ‘떠돌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추적거리는 빗속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붙인 ‘보증사고 공고문’만 을씨년스럽게 나부꼈다. 6개동에 492가구가 들어서는 아파트 공사장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지난 6일 전북 군산시 개정면 통사리에 있는 공공임대 아파트 수페리체 건설현장은 망치질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고요했다.

수페리체의 ‘시계’는 지난 3일 멈춰섰다. 시행·시공사인 진경건설은 3일부로 ‘보증사고’ 공고를 냈다. 모든 권한은 HUG로 넘어갔고 공사도 함께 중단됐다. 원래 2018년 6월 입주 예정이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입주 시기는 기약이 없어졌다. 2018년 말로 밀리더니 지난해 6월, 같은 해 12월로 세 번이나 연기됐다. 입주 시점은 다시 올해 8월로 늦춰질 뻔했다. 그러다 보증사고 공고라는 결말을 맞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 예정자들에게 씌워지고 있다. 2016년 7월 청약 당첨에 기뻐했는데 3년6개월을 기다렸고, 또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집을 처분한 이들은 전세, 월세를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감수하고 있다.

최모(60)씨에게 수페리체는 원망의 대상이다. 최씨는 올 겨울을 화장실도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나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컨테이너박스를 넣어 개조한 집이다. 지난해 3월이면 입주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살던 집을 처분했다. 처음에는 좁은 상가주택을 단기 계약해 지냈다. 천장에 쥐가 돌아다니는 곳에서 더는 지낼 수 없어 최근 ‘비닐하우스 집’으로 옮겼다. 최씨는 “안착할 만한 곳이 없어 임시로 가건물 수준의 비닐하우스에 거처를 마련했다. 가구나 생활도구 등은 모두 친지 집에 나눠 맡겨놓았다. 생활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김모(36)씨 사정도 다르지 않다. 입주가 한정없이 늦어지면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낸다. 김씨는 공공임대 아파트인데 공사에 문제가 있겠나 싶어 계약을 했다. 그 후로 6개월짜리 월세 원룸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내와 아이는 처가로 보냈다. 그는 “몇 달만 원룸에서 버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내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겠다는 희망이 산산이 부서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진경건설이 자금경색에 빠졌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으로 자본금 약 5억원의 소규모 건설사인 진경건설은 지역 업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시행·시공사로 선정됐다. 당시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받는 등 자금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초기공사 지연 등 내부 사정에다 군산 지역경기 침체가 겹쳤다.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서 공사 속도는 떨어졌다. 입주를 1년6개월이나 미루고도 완공을 할 수 없게 됐다. 건설현장 관계자는 “사실상 부도가 난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협력업체 대표는 “5개월째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사가 중단돼 난감하다”고 말했다.

입주 예정자들의 눈물과 절망은 끝이 없다. HUG가 공사 재개를 결정하는 데 다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국토부는 공공임대 아파트의 입주가 세 차례나 미뤄지기는 처음이라고 9일 밝혔다.

‘군산 수페리체 사태’는 사실상 공사 초기부터 예견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처음부터 여러 가지 공사 지연 사유가 발생했다. 여기에다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2018년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등으로 지역경기 침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공사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입주예정자들에게 ‘절망의 부메랑’이 날아왔다.

뒤늦게 국토교통부가 사태 해결에 나섰지만, 해법 찾기는 쉽지 않다. 입주예정자들은 환불을 요구하지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현재로선 완공 후 입주 외에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9일 국토교통부와 전북 군산시에 따르면 수페리체 입주지연에는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몇 가지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 진경건설은 2017년 12월 착공한 뒤 수개월 간 공사가 미뤄지는 사유를 입주예정자들에게 공지했었다. 우선, 지반 지지력이 약해 ‘파일 항타작업(바닥에 구멍을 꿇는 작업)’의 깊이를 변경하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진경건설 측은 “부지가 과거 해안지대였기 때문에 약 15m 이상의 뻘층이 있고 바위 분포도 불규칙하다. 지반조사를 다시 하고 기초공사 설계를 변경해 사업승인을 받는데 2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또 공사장 인근 주민들이 파일 항타작업에 따른 소음과 관련한 민원을 제기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무소음·무진동 공법으로 바꾸면서 다시 2개월가량 지연됐다. 파일 항타작업을 하는 하도급업체가 다른 건설현장의 근로자에게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아 민주노총 건설노조에서 문제를 삼으면서 또 한 달이 밀렸다. 입주 지연으로 직결되는 일들이 잇따라 쌓인 것이다.

다만 진경건설은 끝까지 완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입장이다. 진경건설 관계자는 “자금을 조달해 이른 시일 안에 완공하는 게 회사 방침이었다”고 했다.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진경건설은 지난 3일로 공사에서 손을 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사고 처리 절차에 따라 현장 관리를 위임받고 입주예정자 보호에 들어갔다. HUG는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지 판단한 뒤 완공 시점, 입주 시기를 다시 결정할 방침이다. 이 절차가 모두 끝나는데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 입주예정자들이 올해 또 ‘눈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입주예정자들은 중도금 대출이자만 내고, 다른 집을 구할 수도 없어 피해가 크다고 하소연한다. 진경건설에서 이자를 보전해주기도 했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이자 지원은 끊겼다. 입주예정자들은 84㎡를 기준으로 대부분 7000만~8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자비용으로만 한 달에 20만원 이상을 낸다고 한다.


이렇게 입주예정자들이 고통에 신음하는 동안 공공임대 아파트 건설을 관리·감독해야 할 군산시와 국토부는 사태를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에 관리·감독 권한이 있어 개입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2일 입주예정자들이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서야 부랴부랴 해결에 나섰다.

사업 승인, 완공 시점 연장 허가권한을 지닌 군산시는 진경건설의 자금 조달력이 충분한지 별도 검증을 진행하지 않았다. 사업자 선정 때 검증한 서류를 제출받아 평가한 뒤 허가를 내주기 때문에 공사 과정에서의 자금 문제는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군산시 관계자는 “허위로 서류를 만들지 않는 한 선정 당시 시행·시공사의 시공 능력, 자본 요건 등을 믿을 수밖에 없다. 2018년부터 입주 시기 연장을 결정하기 위해 진경건설 대표, 입주예정자들과 공청회를 가졌었다. 당시에는 완공 후 원활하게 입주가 이뤄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합의해 입주 시기 연장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입주예정자들은 환불을 요구한다. 아파트 곳곳에서 균열 등 심각한 하자가 발생해 입주를 해도 불안하다고 지적한다. 양윤희 입주예정자비상대책위원장은 “언제 입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달에 20만~30만원씩 대출이자를 내고 있다. 수차례 입주 연기는 계약 사기에 가깝다. 군산시, 국토부, HUG, 시공사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 6일 입주예정자 대표와 면담을 갖고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진상조사를 마친 뒤 피해를 줄일 대안을 찾을 계획이다. 다만 환불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국토부에 따르면 보증사고 공고일 기준으로 공정률이 80%가 넘지 않으면 입주예정자들이 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HUG는 지난해 12월 기준 수페리체의 공정률이 85.62%라고 했다. 현재로선 환불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입주예정자들은 현재 창문틀 설치공사, 석고보드공사, 방바닥 미장공사 등이 미완료 상태라 공정률이 80%에 못 미친다고 반박한다. 국토부 진상조사 결과 공정률이 뻥튀기됐다는 결론이 나오면 환불을 받을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이나 감리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는지 종합적으로 조사하겠다. 입주예정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군산·세종=글·사진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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