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준일이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뉴시스

추억의 가수 양준일(51)이 하루아침에 톱스타가 됐다. 3장의 음반을 낸 뒤 2001년 가요계를 떠난 그는 1990년대 음악방송을 다시 내보내는 유튜브 채널들에 힘입어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JTBC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에 출연한 이후 대중의 애정은 더욱 커졌다. 대규모 팬미팅이 열렸고, 지상파 음악방송 무대에 섰으며, 광고까지 찍었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이가 정상급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에는 항상 양준일의 이름이 오른다. 갑작스럽게 운영이 중단된 팬카페, 소속사 물색, 에세이 출간 예정,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원 등록 등 그에 관한 소식이 연일 쏟아진다.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지만 작금의 현상이 나타난 배경에 음악의 존재는 희미하기만 하다. 양준일을 조명하는 기사에는 자신을 낮추는 태도, 긍정적인 자세, 순수함이 대중의 뜨거운 성원을 이끌어 낸 요인으로 거론된다. 기사에 달린 댓글도 선한 모습에 감격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명색이 가수인데 음악에 대한 평가는 얼마 보이지 않는다.

음악 얘기가 적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가수로서 이렇다 할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해 문화혁명을 일으키기 전까지 대중은 대체로 친숙하지 않은 것, 파격적인 것에 인색했다. ‘리베카’를 부를 때 여성 연기자를 대동해 뮤지컬처럼 꾸민 무대는 많은 이에게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댄스 위드 미 아가씨’ 때의 퍼포먼스는 자유분방함이 지나쳐서 산만하게 느껴졌다. 성공은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90년에 발표한 ‘리베카’는 공연윤리위원회(공륜)로부터 표절 판정을 받았다. 공륜이 표절 대상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리베카’의 전주는 재닛 잭슨이 89년에 낸 ‘미스 유 머치’의 전주와 매우 유사하다. 전주와 간주 끄트머리에서 짤막한 감탄사를 외치는 것도 똑같다.

생산적인 일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92년에 출시한 2집에서 양준일은 컨템퍼러리 R&B의 부드러운 선율과 힙합 특유의 강한 리듬을 결합한 ‘뉴 잭 스윙’을 주메뉴로 선보였다. 한국에 뉴 잭 스윙을 전파한 대표 인물로 통하는 듀스가 93년에 데뷔했으니 양준일이 먼저 이 장르를 소개한 셈이다. 외국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음반이긴 하지만 우리 대중음악이 조금 더 다채로워지는 데 일조했다.

애석하게도 저 일말의 실적을 알아주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가수’로서 양준일은 복고 열풍과 새로운 미디어 환경, 특이함을 주목하는 시대를 잘 타서 부활에 성공한 ‘노 히트 원더’일 뿐이다. 본인은 욕심부리지 않고 옛날 노래를 부르며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가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운 좋은 별난 가수’, ‘심성 좋은 사람’ 정도로 기억되지 않으려면 음악적인 결실을 맺어야 한다. 가수 양준일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한동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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