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숙 (16·끝) 내 여생의 과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말씀 붙들고 어둡고 긴 터널 지나 아동인권 교육·훈련에 여생 바칠 것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오른쪽 세 번째)가 지난해 11월 20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협약 30주년 기념 포럼’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는 역경이 두려웠다. 환난이나 고난 같은 단어는 피하고 싶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예수님 십자가 고통의 진정한 의미도 알지 못했다.

원인 모를 질병에 걸렸던 남편이 3년 만에 확진을 받았다. 파킨슨병이었다. 남편은 13년간 이 무서운 병과 고투했다. 온 가족이 함께 아팠다. 200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남편이 떠났다. 얼마 뒤엔 30여년 헌신한 일터를 떠났다. 내 것으로 알고 누려온 걸 연달아 잃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날 때면 목사인 맏아들 내외와 기도원을 찾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원 본당에 걸린 현수막의 성경 구절이 내게 확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나는 이 말씀을 굳게 잡았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만 하면 된다고 믿으니 터널 끝 희미한 출구가 보였다. 내 역경의 열매는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정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나는 기도하는 어머니요, 기도하는 시어머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여생의 과제다.

역경을 거친 뒤 얻은 결론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신을 주셨기에 이 땅의 무엇을 잃어도 우리에겐 하나님, 곧 모든 것이 남는다’는 것이다. 너무나 황망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기도할 수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역경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련다. 아직 갈 길이 남았기에 다음의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나는 그간 다양한 사람에게 아동인권을 교육하고 훈련하며 이 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교육받으면 그만이지 왜 훈련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우리 대부분은 학교나 교회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많은 양의 지식이 머리에 축적됐지만, 훈련은 없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가정이 순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가정 학교 교회가 모두 제 기능을 하면 아동인권 교육·훈련은 따로 필요 없다. 아동학대의 83%가 친부모에 의해 발생한다. 학교에서는 경쟁과 차별, 따돌림 등이 발생해 민감한 청소년기 아동을 죽음으로 내몬다.

여러 직종의 수많은 이들에게 인권 교육·훈련을 했지만, 강의 요청을 받지 못한 곳이 있다. 바로 교회다. 그러다 지난해 겨울, 한 목회자의 전화를 받았다. 한 교단의 지방회 교육부 총무라고 했다. 교회학교 교사 연수를 한다며 아동인권 강의를 요청했다. 최근 내가 쓴 책 ‘이렇게 살아도 행복해’(국민북스)를 읽었다며, 색다른 강의를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기쁜 마음으로 수락하고 2시간 수업을 즐겁게 준비했지만, 강의는 무산됐다. 지방회장인 목회자가 “교회에서 무슨 인권 교육이냐. 안 된다”고 말했단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수화기 너머로 너무 죄송해하는 그분을 위로했다.

사람들은 인권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법학자로 ‘불편해도 괜찮아’란 책을 쓴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인권을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마 7:12)이라 정의한다. 우리가 평생 지키려고 애쓰는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다. 인간 사랑을 모르고 하나님 사랑을 고백할 수 없다. 인간 사랑은 귀로만 들어선 어렵고 삶의 현장에서 훈련해야 한다. 노력하고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매일 구해야 조금씩 다가갈 수 있는 계명이다. 인권감수성과 영성은 별개가 아니다.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별개가 아닌 것과 같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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