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췌장암센터 우상명 교수가 지난 8일 췌장암이 의심되는 50대 여성의 췌장을 초음파내시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62세 남성 A씨는 석달여 동안 소화가 잘 안되는 증상을 겪다가 황달까지 생기자 병원을 찾았다.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과 초음파내시경 검사를 통해 췌장암 3기라는 날벼락 판정을 받았다. A씨는 “그냥 소화 불량이겠거니 했는데…”라며 황망해 했다. 암이 중요한 혈관에 닿아 있어 수술은 불가능했다. 의료진은 “그렇다고 희망을 버릴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A씨는 우선 항암치료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시도하기로 했다.

신규 환자 계속 늘고 생존율도 상승

최근 발표된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췌장암은 7032명이 새로 발생해 전체 암 순위에서 8위를 차지했다. 전년 보다 한 단계 상승했다. 전체 암 발생률은 2011년 이후 매년 2.6%씩 감소하고 있으나 췌장암은 유방암, 신장암, 전립선암과 함께 1999년 이후 계속 늘고 있다. 최근 프로축구 유상철 감독도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아 안타까움을 안겨줬다.

대표적 난치암인 췌장암의 증가세가 이처럼 꺾이지 않고 있는 건 어두운 소식인 반면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1996~2000년 8.7%, 2001~2005년 8.4%, 2006~2010년 8.5%로 15년간 10%를 밑돌던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이 2011~2015년(10.8%) 처음 두자릿수를 기록한 후 2012~2016년(11.4%), 2013~2017년(12.2%) 계속 상승하고 있다. 과거 ‘췌장암=죽음’의 공식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췌장암네트워크 김선회(국립암센터 교수) 대표는 “췌장암이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힘든 종양이긴 하지만 무조건 절망할 질병은 아니다”며 “CT 등 진단 기법의 발전, 적극적인 치료 시도, 새로운 항암치료법의 도입 등으로 더디긴 하지만 치료 성적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췌장암 증가의 주요 원인은 고령 인구 증가와 붉은고기 지방질 섭취 등 식생활의 서구화, 흡연 등이 꼽힌다. 췌장암은 60대 이상에서 많이 발생한다.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췌장암에 걸릴 확률이 최대 5배 높다. 국립암센터 췌장암센터 우상명 소화기내과 교수는 “예전과 달리 췌장암이 의심되면 영상 및 조직검사를 적극적으로 받는 고령층이 늘고있는 사회상의 변화도 한몫한다”고 설명했다.

가족력·만성 췌장염·당뇨 ‘위험 요인’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췌장이 몸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특징적 증상인 황달, 통증, 체중감소가 나타났다면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증의 경우 암이 2기 이상 진행됐을 때 상복부, 즉 명치 끝에 느껴지며 등쪽으로 뻗치기도 한다. 다이어트 같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체중이 10% 이상 빠지면 의심해 볼 수 있다.

우 교수는 “췌장암의 80% 이상은 수술이 힘든 3, 4기에 발견된다. 수술을 통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1, 2기)는 20% 미만”이라고 했다. 수술하더라도 90%는 재발하기 십상이다.

췌장암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런 소화불량이 있으면 흔히 위내시경 검진을 받고 위염 치료를 하곤 한다. 많은 경우 이런 치료로 1~2일, 길어도 1주일 안에는 좋아지지만 증상이 계속 나빠진다면 췌장암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 당뇨병과 췌장암은 연관성을 보인다. 췌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인슐린 호르몬 분비가 현저히 줄기 때문에 당뇨가 나타날 수 있다. 췌장암 환자의 90%가 당뇨를 앓고 있다. 가족 중에 당뇨 환자가 없는데, 중년 이후 당뇨 진단을 갑자기 받았다면 췌장암과 관련있을 가능성이 있다. 거꾸로 20~30년간 당뇨를 앓은 환자 중 최근 2~3개월 전부터 식사나 활동량의 변화가 없음에도 혈당이 널뛰듯 하는 경우 췌장암의 징후일 수 있다.

음주 자체는 췌장암과 직접 관련이 없다. 하지만 지나친 음주는 만성 췌장염을 일으킬 수 있고 드물지만 췌장염이 췌장암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만성 췌장염은 흔하진 않지만 음주에 흡연까지 한다면 췌장암 위험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만성 췌장염, 췌장암 가족력 등 고위험군은 1년에 한 번씩 복부 CT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반복적인 CT검사는 방사선 노출 위험이 있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따라서 방사선 위험이 없는 초음파내시경(십이지장까지 내시경을 넣은 뒤 초음파로 췌장 진찰)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가 권고될 수 있다.

우 교수는 “대부분의 췌장암 환자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진단 후 생존 기간은 수 개월에 불과해 진행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면서 “이 때문에 가급적 수술로 근치적 절제가 가능한 낮은 병기(1, 2기)에서 췌장암을 조기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립암센터는 올해 국내 처음으로 췌장암 예방 및 진단 지침 제정을 준비 중이다. 외과와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등 관련 학회에서 참여해 췌장암 고위험군을 정의하고 췌장암 검진법을 제시할 예정이다.

우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연구를 근거로 제시되는 국제 가이드라인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췌장암 진료 지침이 처음 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췌장암 환자의 치료율을 높이고 불필요하거나 근거가 미약한 방법은 치료에 적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생존율 높이는 최신 치료법

최근 발전된 췌장암 치료법들이 낮은 생존율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우선, 과거에는 어려웠던 수술 전후 항암 및 방사선 치료의 적극적 시행이다. 암이 커져 췌장 주변 혈관(동맥)이나 신경에 맞닿아 있을 경우 수술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신 항암제나 첨단 방사선 치료(양성자 치료)를 적극 시도해 암을 줄여서 수술이 가능해지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또 췌장암 환자의 암 조직에서 유전자 돌연변이(BRCA 등)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표적 항암제나 면역치료를 적용하는 임상시험이 지난해부터 진행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복강경 수술이나 로봇 수술 등 첨단 최소 절개 수술 기법들도 췌장암에 확대 적용돼 빠른 회복과 치료율 향상을 돕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보급이 예상되는 췌장암 신치료 기술 연구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혈액에서 췌장암 유전자를 검출해 조기 진단에 활용하거나 췌장암 환자의 조직을 쥐의 췌장에 심고 이를 키워 다량의 암 조직을 확보해 해당 환자가 어떤 항암제에 잘 들을 지를 미리 알아내는 ‘아바타 쥐’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암세포를 굶겨죽이는 신개념 ‘대사 항암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도 올해 시작된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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