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도 북 공격할 의사 없는데 핵무기 만들어 스스로 군사적 긴장과 경제난에 빠져
핵개발 계속하는 건 새로운 길 아닌 만큼 비핵화 통해 체제 보장과 경제 문제 해결해야


장자(莊子)에 도룡기(屠龍技)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용을 잡는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 그는 천금 같은 가산을 탕진해 가면서 3년 동안 그 재주를 배워 이어받고 기뻐했는데 돌아보니 그 재주를 쓸데가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30년 동안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국력을 소진하고 국제사회와 대결했다. 북한은 2017년 11월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안보를 위해 핵을 만든다고 했으나 그것을 완성한 이후에도 여전히 안보 불안을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핵무기를 어디에 쓰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하는 순간 북한 정권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한민족 전체가 망하는 참상이 발생한다.

북한은 핵무기가 없어도 사실상 안전이 보장돼 있다. 주변 어떤 나라도 북한을 무력으로 공격해서 체제를 무너뜨리고 점령할 의도를 가진 나라가 없다. 그렇게 할 실익도 없고 지정학적 위험성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군사력을 사용한 통일을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다. 북한이 안보 불안을 느낀다면 그것은 불신 때문이다. 그것은 관계정상화를 통해서 풀 일이지 핵무기를 만들어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스스로 군사적 긴장에 빠졌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면서 북한의 새로운 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북한 스스로가 새로운 길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북한이 전략무기 도발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연말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시험과 핵실험 중단 등 미국에 공약한 것에 더 이상 매여 있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강경대응을 유발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북한도 미국과의 험악한 대결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상황을 관리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과를 보면 도발을 하든 대화를 하든 현실은 똑같았다. 북한은 핵무력 증강을 계속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노선을 바꾸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전혀 새로운 길이 아니다.

그러면 북한이 12월 당중앙위원회에서 제시한 정면돌파전이 새로운 길일까. 말은 결의에 차 있고 그 고민과 사색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게 없다. 제재 국면이 장기화할 것이니 별수 없이 자력갱생으로 버텨 나가자는 것이 정면돌파론이다. 이것도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현상 유지에 더해 과거 회귀적이다. 그동안의 경제정책을 임시방편적이라고 비판하고 국가적 통제를 제시하면서 국가상업 체계와 사회주의 상업을 복원하겠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경제운영방식으로 북한의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핵화를 거부하니 이러한 방식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비핵화가 안 되면 북한의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은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며, 국제경제와의 협력으로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경제를 현대화하고 인민들의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북한이 안보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핵무장이다.

북한도 2018년 3월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과 협력관계를 맺는다면 미국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해소된다. 미국도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북한이 관계정상화를 요구하면서 모든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등 구체적 비핵화 행동조치를 내놓고 이를 동시 교환하기 바란다. 동시적 일거 행동이 아니면 불신이 남아 적대관계가 다시 복원될 소지가 크다. 이제까지 그래왔다. 단계적 행동조치나 신뢰회복을 통한 비핵화는 이미 실패한 해법이며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솔직하게 이를 설득해야 한다. 어정쩡한 비핵화로 이 상황을 넘어가려 하면 더 큰 재앙의 불씨를 살려두는 것이다. 비핵화의 진전이 없자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도 아무 흔적이 없지 않은가. 엊그제는 뜬금없는 생일축하 메시지를 갖고 이상한 망신까지 당했다.

정부는 정세를 정확히 읽고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북한의 신속하고 완전한 비핵화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정상회담은 또다시 해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북한도 수십년 동안 국력을 쏟아부어 개발한 핵무기를 버리기로 결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안보가 더 위험해지고 경제를 살릴 수 없고 인민생활이 주변 나라보다 형편없이 떨어진다면 그것을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지도자는 그러한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있고 눈높이가 관료들과는 다르다. 지도자만이 좋은 선택을 결단할 수 있고, 비핵화의 큰 거래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북한 지도자가 그러한 결단으로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라.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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