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선택의 지혜를 배워가는 일


실험을 한번 해보자. 스마트폰으로 이번 여름에 가고 싶은 지역의 숙소를 검색해 보자. 다음 주부터 시작할 아침운동에 신고 갈 조깅화를 검색해도 좋다. 그리고 다시 인터넷에 들어가 보라. 어느새 전에는 뜨지 않던 숙박업소와 운동용품에 관한 광고가 올라와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며칠 동안 계속 뜬다. 최저가 편리성 취향까지 고려해 ‘이래도 안 가고 안 살 건가’라고 끈질기게 제안한다.

식당에 가도 추천메뉴가 있고 내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를 기억했다가 비슷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추천해 준다. 그렇게 제안받은 정보들은 대체로 만족도가 높다. 예술부터 생활용품까지 가리는 게 없다. 거리를 나서든, 스마트폰을 켜든 세상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안다.’

이런 방식을 큐레이션(curation)이라 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물을 기획하고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에서 비롯된 큐레이션은 이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큐레이션은 콘텐츠의 1차 생산자가 아니지만, 콘텐츠를 고르고 배치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것만을 전달한다.

삶에서 만나는 큐레이션은 편리하고 안전하다. 익숙하지 않거나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선택했다가 겪게 되는 낭패를 피하게 해준다. 선택할 게 많고,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서비스는 고맙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큐레이션을 환영하기만 해야 할까. 큐레이션에 익숙한 시대가 될수록 의외성은 사라지고 비슷한 경험의 사례들만 늘어간다. 대세를 따르게 되고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판단력을 믿지 못한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리뷰를 보고 그 과정이 어떻게 됐든지 간에 큐레이션으로 추천받은 것만이 나의 시간과 물질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미국 제임스매디슨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제이미 커츠 교수는 10대 후반부터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를 다닌 여행전문가다. 그의 책 ‘행복한 여행자로 사는 법’을 보면,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갔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가 스마트폰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1년간 미술사에 대해 공부하고 친구와 로마에 갔을 때의 일이다. 판테온이라는 고대 신전을 찾아가는데 낡은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길을 나섰다. 최선을 다했지만, 미로 같은 거리와 골목길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남들은 쉽게 찾는 명소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좌절감을 느끼며 포기하고 말았다. 정처 없이 헤매던 두 사람은 결국 좁은 골목길을 벗어났는데, 거기서 100m도 채 되지 않는 광장 한가운데 그토록 찾던 판테온이 있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판테온신전 앞에서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경외감과 환희가 찾아왔다. 스마트폰만 있었다면 시간을 절약한 것은 물론이고 좌절감도 느끼지 않았겠지만, 그런 효율성 속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큐레이션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작은 실패조차 경험하지 않는 소비습관과 문화적 취향은 우리를 점점 비슷하게 만들고 안전한 선택만 하게 만든다. 때론 낯선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들어보고 서점에 들러 제목이나 표지에 끌려도 좋으니 보고 싶은 책을 스스로 골라봐야 한다. 이전엔 맞았어도 이제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모두가 다 큰길로 갈 때, 작은 길로 들어설 수도 있어야 한다. 선택하는 힘을 포기할 때, 우리는 대세만 따르게 된다. 대세와 성공이 꼭 진리는 아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선택의 지혜를 배워가는 일은 구원과 진리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포기해서는 안 될 삶의 태도다.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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