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우정 (1) 청년시절 나는 교회 죽돌이였다

어릴 적 이사가는 곳마다 교회 근처… 놀이터 삼아 놀다 교회서 살다시피해

김우정 원장(오른쪽)이 헤브론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고 정기 검진차 방문한 어린이 및 부모들과 포즈를 취했다. 헤브론병원 제공

2007년 9월 개원하고 두어 달쯤 지났을 때였다. 퇴근했다가 볼 일이 있어 밤 9시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다. 병원 문 앞에 30여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캄보디아 프놈펜도 많이 발전해 저녁에도 병원 주변이 북적거린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인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알고 보니 이들은 다음 날 아침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온 환자들이었다.

캄보디아도 여러모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의료 환경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만 의료혜택이 돌아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원 문턱은 여전히 높다. 그래서 무료로 진료, 치료하자며 한국 의료진 몇 명이 연합해 세운 병원이 헤브론병원이다. 장기적으로는 의료진을 길러내고 궁극적으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120년 전 한국을 찾았던 서양 의료선교사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헤브론병원은 현재 캄보디아 선교의 기지병원으로 불린다. 진료, 치료하며 복음을 전하고 지역에 나가 선교한다. 또 한국에서 온 많은 의료인이 이곳을 거점으로 의료선교 활동을 펼친다. 병원은 현재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심장내과, 정신과, 치과 등에 한국 의사가 상주하고 캄보디아 의사 20여명이 같이 일하는 중형급 병원이 됐다. 매일 300여명의 외래환자와 입원 수술 환자들이 병원에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 심장센터도 세워 직접 심장 수술도 한다. 그동안 400여명이 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12년을 지내고 이제는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특별히 암 진단과 수술, 심장 수술, 안과 수술 분야에서 특화된 병원을 지향하고 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특별히 이번에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를 통해 내 삶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게 돼 감사하다.

부모님은 북한 신의주 밑 철산에서 태어나셨다. 한국에 복음이 먼저 들어온 지역 중 한 곳이지만 어머니만 교회에 가본 적이 있으셨다. 부모님은 한국전쟁 직전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양복점을 하셨고 우리는 서울 남대문 시장 초입의 목조로 만든 2층 적산가옥에서 살았다. 나는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신앙생활은 교회가 집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누린 혜택이라고 볼 수 있다. 1901년 스크랜턴 선교사가 설립한 상동감리교회가 집 근처에 있어 4~5세 때 그곳에서 자주 놀았다. 남산동 산동네에 집을 사서 이사해 남산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학교와 집 사이에 충무로교회(현 충무교회)가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교회의 한 행사에 두 살 위인 누나와 함께 참석했다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청년 때는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고 아버지는 후에 장로가 되셨다.

나중에 의사가 됐지만 어릴 때는 공부를 안했다. 그러다 4학년 2학기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교육열이 상당했던 터라 그 분위기에 편승한 것 같다.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에 다녔고 개발독재 정권으로 사회가 워낙 시끄러울 때여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첫 대학 입시 때 떨어지고 말았다.

김우정 원장 약력=1953년 서울 출생, 가톨릭 의대 졸업,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김우정소아과의원 원장, 로뎀소아과의원 원장, 충무교회 장로, 캄보디아 의료선교사, 헤브론병원 원장, 대통령표창, 자랑스런 경기고 동문상, 자랑스런 가톨릭대 동문상, 이승휴사상선양회 봉사상, 한경직목사 기념사업회 봉사상 수상.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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