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사무소 경리직원과 관리소장이 1주일새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노원구 A아파트의 ‘관리비 증발’ 사건 관련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은 수년간 관리비가 부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적정’ 의견을 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구청은 이를 근거로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서울시와 경찰 등은 해당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아파트 관리비 횡령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일보가 13일 확보한 2014~2018년 A아파트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3년간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은 해당 아파트의 회계연도 재무제표에 대해 ‘적정’ 의견을 표명했다. 이들은 권고사항에서 사건의 발단이 된 ‘장기수선충당금’ 관련 “충당금의 과소적립은 미래 입주자의 관리비 부담을 초래하니 장기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만 지적했다.

해당 아파트는 지난해 연말 노후시설 공사를 위해 장기수선충당금 통장을 조회했는데, 장부상 7억원으로 돼 있어야 할 잔액은 240만원에 불과했다. 이 사실이 밝혀진 뒤 경리직원과 관리소장은 지난달 26일과 30일에 연이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감사를 진행했던 회계법인 관계자는 “경리직원이 우리에게 제출한 관리비 예금잔고증명서가 위조됐던 것 같다”며 “회계사가 은행에서 직접 증명서를 받으려 열 번이나 경리에게 입주자 대표의 인감도장과 신분증 사본 등을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때마다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이 때문에 (감사에 필요한 부분을) 알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구청 관계자는 “우리 일은 감사보고서를 검토하고 적정 의견인지 확인하는 것”이라며 “부적정 등의 의견이 나와야만 관리비 실태조사 대상으로 분류된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4년부터 ‘맑은 아파트 만들기’ 사업을 통해 300세대 이상 아파트에 대해 구청이 관리비 실태조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A아파트처럼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적정 의견을 내면 구청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한국공인회계사협회에 ‘A아파트에 대한 2017~2018년 외부 회계감사에 대한 검토를 해 달라’는 내용의 심리의뢰공문을 보냈다. 협회 관계자는 “회계사가 직접 통장을 확인하지 않고 감사보고서를 발급했다면 중징계 대상”이라며 “사실 아파트 감사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경우가 꽤 많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강남구의 임대아파트에서도 관리비 횡령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근무한 관리소장 5명이 4억2000만원 정도의 관리비를 빼돌렸다며 이달 초 서울중앙지검에 이들을 업무상 횡령과 배임,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이 아파트를 관할하는 강남구청 관계자들도 업무상 배임과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소한 바 있다.

조민아 방극렬 기자 minajo@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