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시내 대부분 가전제품 판매점에는 지금 ‘신구간 세일’이라는 현수막이 요란하게 걸려 있다. 육지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 신구간(新舊間)은 제주도 사람들이 이사하는 기간으로 전자제품 판매점은 이때가 대목이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은 물론 사람 왕래가 잦은 대형마트, 동네 식자재 판매점 벽에도 임대할 방이 있다고 알리는 쪽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제주도에는 각 가정과 마을, 농사, 어업, 사업 등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1만8000 신이 있다고 한다. 이 신들이 일 년에 한 번씩 모두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1년 동안 일을 보고하고 인사발령을 받아 다시 인간세계에 부임한다. 전임 신과 신임 신이 바뀌는 기간이다.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 8일 동안으로 제주도에는 이때 신들이 모두 하늘에 올라가 자리를 비운다. ‘손 없는 날’이다. 올해는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다. 사람들은 그 틈을 타 평소 꺼리던 일을 해치운다. 이사, 집수리, 화장실 수리, 울타리 보수 등을 서둘러 한다. 신이 지상에 있을 때 하다 잘못되면 이들을 관장하는 신들의 심기를 거슬러 동티가 난다. 그렇게 믿고 있다.

신구간이 되면 이사업체와 부동산중개업소가 특수를 누린다. 한때 이사 의뢰가 많던 시절 제주도의 이사업체가 미처 수용하지 못해 육지의 이사업체까지 불러왔다. 당연히 이사비용이 많이 든다. 인터넷, TV, 전화 등을 설치하는 통신업체, 가스설비업체, 이사 쓰레기 처리를 위한 환경미화원 등이 한바탕 난리를 치른다. 이 기간 이사하면서 버린 가구의 24시간 배출을 허용하고 환경미화원들은 이사 쓰레기 처리를 위해 특별근무를 한다. 공무원 정기인사 때 각 부서 직원들이 동시에 서류박스를 들고 자리를 옮기듯 각 가구가 집을 비워주고 다른 가구가 들어온다.

2017년 제주시 이도2동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제주 지역신문에 기고를 했다. 이도2동은 전형적인 구시가지다. 신구간에는 이사한 뒤 14일 이내 해야 하는 전입신고를 읍면동사무소에서 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니 인터넷으로 하면 편리하다고 권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이 직원은 신구간 이사로 인한 전입신고가 하루 90여건 된다고 했다. 같은 해 신구간 전입과 상관없는 다른 때 이도2동 전입신고는 하루 15~20건이었다. 한 학습백과사전은 언제 통계인지 표시하지 않았지만 제주 신구간 이사 인구가 5000명에서 1만명으로 도민의 15% 안팎에 해당한다고 했다.

신구간에 이사하는 사람은 자기 주택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신구간에 집을 구해 이사하고 이듬해 신구간에 다시 이사한다. 그래서 주택 임차료는 1년 단위, 연세(年歲)로 계산하고 이를 미리 지불한다. 선불이다. 집세를 까 나간다는 의미로 깔세라고도 한다. 신구간이 아닌 기간에 이사해도 집 주인은 다음 신구간까지만 임대한다. 그 임차인은 그때부터 신구간 이사 가구에 편입된다. 제주도의 독특한 연세의 정착은 이렇게 신구간 이사 관행에서 기원했다.

신구간 이사 관행은 그러나 제주도의 빠른 사회변화와 함께 퇴색하는 추세다. 제주도 언론은 이사업체들이 지난해보다 예약이 줄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보도는 지난해에도 있었다. 이사업체들의 엄살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대가 바뀌며 신구간에 대한 인식이 무너지는 점, 신구간에 개의치 않는 이주민이 증가한 점, 주택 보급률이 높아지며 자가 소유자가 많아진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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