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해결모임, 5일 양육비 이행 강화법안 통과 촉구 사진전·서명운동 개최. 양육비해결모임 제공

미성년 자녀에 대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들의 신상 공개는 명예훼손인가, 아니면 아이의 생존권을 위한 공익적 수단인가.

이를 판단하는 국민참여재판이 14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온라인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에 양육비 미지급자로 이름과 얼굴이 공개된 5명이 2018년 9월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구본창(56)씨를 고소한 사건이다. 애초 검찰은 구씨를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지만 재판부가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직권으로 재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서는 이혼 후 전 배우자가 지급하기로 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때, 이를 받아낼 방법이 신상 공개밖에 없는지가 쟁점이 됐다. 구씨 변호인은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는 현실을 강조했다. 구씨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아이들의 양육비 지급을 위해 사이트를 운영해왔다는 점, 양육비 미지급 부모들을 비방할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했다.

구씨 변호인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예와 아동의 생존권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한 피고인이 법적 처벌까지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구씨는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부모들로부터 15차례 고소를 당했지만 대부분 불기소 처분 또는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정식 재판에 넘겨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씨는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아무런 법적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며 “우리의 최종 목표는 양육비 의무 지급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지급 판결 등에도 불구하고 지급하지 않고 버티는 부모의 신상을 사이트에 공개했다가 양육비 지급 사실이 확인되면 삭제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2018년 7월 개설돼 현재까지 400명의 신상이 공개됐고 이 중 113명이 양육비를 지급했다고 한다. 현재도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 거주지를 포함한 신상이 공개돼 있다. 신상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확실한 압박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구씨가 부모들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양육비를 주지 않은 무책임한 아빠들’이라는 설명을 달았다”며 “이는 명백히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구씨와 함께 기소된 A씨(33)가 배드파더스 외 자신의 소셜미디어 등에 양육비를 주지 않은 전처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올리고 “재미있는 일들을 시작해보자”며 욕설을 올린 것 역시 명예훼손 의도가 다분하다고 봤다.

이에 구씨 변호인단은 “A씨가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린 것은 전처가 2년 넘게 면접교섭에 응하지 않고 모든 연락을 차단했기 때문”이라며 “전처가 아이가 사경을 헤맬 때도 유흥을 즐기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참을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자 국민배심원단에서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는 A씨의 전처와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3명,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미성년 자녀를 홀로 키우는 부모가 전 배우자 등으로부터 약속한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법원으로부터 양육자로 지정받아 아이를 직접 양육하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는 부모 중 29.4%가 실제로는 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2015년 27.8%에서 더 늘어난 수치다. 양육비 이행 상담과 소송을 지원하는 여가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이 2015년 문을 열었지만 이런 기관이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답변이 55.1%나 됐다. 여가부는 한부모가족 정책 수립에 참고하기 위해 3년 주기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양육비 채무자의 운전면허 등을 취소하거나 정지하는 제재 법안이 10여건 발의돼 있다. 이 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규정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현행법상 최저생계비 이하로 소득을 신고하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등 허점이 많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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