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 기회가 균등 부여되고 약자 더욱 배려해야 공정사회
빈부격차 속 선진국 사회질서 유지되는 건 이 원칙 때문
공정의 잣대로 제도와 관행을 제로베이스에서 혁신해야


지난 7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에 대한 국민의 높은 요구를 절감했고 정부는 반드시 이에 부응할 것”이라며 “국민의 삶 모든 영역에서 불공정을 과감히 개선해 공정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 사회지도층 인사 자녀의 입시 및 채용비리 사태가 불거지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뼈저리게 경험한 일반 국민, 특히 청년층이 열망하는 핵심가치로 ‘공정성’이 떠오른 데 따른 대응으로 보인다.

공정한 사회와 불공정한 사회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철학교수였던 존 롤즈는 저서 ‘사회정의론’에서 공정한 사회는 ‘기회균등의 원칙’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차등의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라고 주장했다.

기회균등의 원칙이란 신분과 성별 등 사회계층에 의한 차별을 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직위와 직책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르면 사회지도층 및 그 자녀가 편법, 꼼수, 부정청탁 등을 통해 대학입시와 채용, 병역, 납세, 상속 등에서 특혜를 받는 것은 전형적인 불공정 사례에 해당한다. 입시컨설턴트의 자기소개서 대필, 미성년 자녀의 논문 공저자 등재, 교내외 과제물 대리 작성 등 입시 관련 불공정, 반칙과 부정 청탁에 의한 특혜채용과 병역 면제 및 탈세, 고위 공직자 출신에 대한 전관예우 등이 기회균등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례들이다.

민관 유착 우려가 높은 식품, 소방 등 국민안전과 방위산업, 교육 분야 등에서 퇴직 공직자들의 재취업도 과도한 특혜가 아닌지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지도층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각종 제도를 통해 공정성이 훼손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 일반 국민들은 사회 시스템 전반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정부는 사회지도층의 편법과 일탈이 자주 발생하는 분야의 법과 제도가 기회의 공정성을 훼손하는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불공정 사례가 발생할 경우 이를 적발해 엄격하게 처벌하는 사법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자조적인 용어가 상징하듯 사법기관은 제 식구 감싸기와 살아있는 권력 및 거대자본과의 유착으로 법 집행의 공정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수의 사회조사에서 가장 공정해야 할 사법기관의 법 집행이 가장 불공정하게 운영된 분야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검찰의 기소권 독점 등에 따른 불공정 문제를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으로 오랜 논란 끝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다. 앞으로 공수처,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들이 국민이 염원하는 공정사회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롤즈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적 계층사다리의 어느 위치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 펼쳐진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차등의 원칙’에 만장일치로 합의할 것이라고 봤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배려하는 사회이며, 이러한 방향에서 차별은 원칙적으로 허용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회적 약자인 저소득층, 여성, 장애인, 다문화가정, 어린이, 노년계층, 영세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 대한 정부의 배려와 지원은 공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회적 취약계층의 청소년들에게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경쟁을 시작하도록 요구한다면 이들은 취업은 물론 연애, 결혼, 출산, 주택 마련 등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자포자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각별히 배려해야 한다. 대학입시에서 농어촌 지역 출신자를 우대하는 지역균형선발, 공무원·공공기관 취업에서 양성평등 채용, 장애인 할당 채용, 지방인재 채용, 저소득층 채용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채용뿐 아니라 조직의 정책결정을 담당하는 중견관리직에도 여성, 지방, 이공계 출신의 목소리가 보다 많이 대표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부가 출산, 육아, 보육, 돌봄을 책임져 사회적 취약계층의 여성과 가족 부담을 덜어주고 가장 심각한 문제인 주거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생활 출발선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파격적인 주거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빈부격차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사회질서와 경제적 번영이 유지되는 것은 기회균등의 원칙과 사회적 약자 배려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제로베이스에서 공정의 잣대로 각종 제도와 관행을 혁신해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

남궁근 서울과기대 행정학 명예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