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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낙하산의 추억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수은행장 탈락인사로 돌려막기 No, 공공기관이 청와대수석 재취업자리인가?’

지난 13일 찾아간 서울 중구 을지로1가 기업은행 본점 로비 한복판엔 이런 문구들이 적힌 대형 현수막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쪽엔 노조의 농성텐트가 자리 잡았다. 2020년 새해 새 출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어수선하다.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새 행장에 임명한 것을 두고 노조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국책금융기관에서 으레 벌어지는 통과의례로 며칠 만에 끝나겠지 하던 예상은 빗나가고 윤 행장은 12일째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조 대토론회를 기점으로 윤 행장과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겠구나 하는 예상도 나왔으나 하루 만인 14일 그런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간 양상이다. 노조는 오히려 상급단체인 한국노총과 연대해 투쟁의 대오를 강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조의 낙하산 인사 주장에 대해 선을 긋고 나선 때문이다. 그는 “기업은행은 정부가 투자한 국책은행이면서 정책금융기관으로 일종의 공공기관”이라며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토(veto)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면서 국책은행장 인사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또 “윤 행장이 자격이 미달하는 인사라면 모르겠는데 경제·금융 분야에 종사했고 우리 정부 때 경제수석을 하고 IMF 상임이사까지 역임했다”고 노조의 자격 시비에 대해 반박했다.

문 대통령 말은 액면 그대로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기획재정부 53.2%에 산업은행, 국민연금 지분을 포함할 경우 범정부 지분이 65%나 되는 대주주가 일할 사람 맘대로 뽑겠다는데 토를 달지 말라는 엄명이다. 기업은행 사측 관계자는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 중소기업 정책을 원만히 펴나가기 위해 윤 행장이 적임자”라며 조직 안정을 위해 행장 임명을 수긍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그동안 2011년부터 3차례 내부 인사가 은행장이 됐다는 이유로 이를 계속 고집할 이유는 없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변화가 필요하면 외부에서 수혈하고, 안정이 필요하면 내부에서 발탁”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기업은행이 상장회사로 외국인 20%를 포함해 나머지 35% 주주들의 입장은 무시해도 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일반 국민의 예금을 재원으로 경영이 돌아가는 상업은행 성격이 강해진 점을 간과한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변화가 필요할 경우 외부에서 수혈한다고 한 논리는 무사안일 내지는 방만한 조직을 개혁하겠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1961년 이래 공수부대처럼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수많은 인사들은 방만경영을 일소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 1954년과 1976년 출범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부분 ‘모피아’ 출신이나 대선캠프 출신으로 이뤄진 외부 인사로 100% 채워졌는데 ‘신의 직장’이니 ‘방만경영이 여전하다’느니 하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는 것은 조직이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썩었거나 조직을 잘 몰라 그냥 타협했거나 둘 중 하나다.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모피아 인사들의 회전문식, 나눠먹기식, 막가파식 낙하산 인사가 국책금융기관에서 습관처럼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원장의 제청만으로 같은 대학 학과 동기이자 행시 동기로 수십년을 한 직장에서 한솥밥을 먹은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의심받기 딱 좋은 정황증거 아닐까.

낙하산 인사를 빌미로 임금과 복지혜택을 반대급부로 챙기려 한다며 노조원들의 출근저지 농성을 인신공격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는 결국은 투명한 인사 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다.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국책은행 엘리트 직원 중 많은 이들이 최고위직의 희망을 접고 월급만 바라고 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참에 기업은행을 계기로 전체 공기업의 CEO 선임과 관련한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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