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교회의 축복이 나라를 지킨다


우리 사회는 초갈등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서 분쟁과 다툼, 증오와 반목의 수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기 방식대로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염려하고 분노하며 소리치는 것이다. 애국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나라사랑의 진심은 같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동아시아 땅끝까지 쫓아오는 붉은 공산제국의 야욕 속에서도 이승만정부를 통해 자유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라가 분단됐고 이념 갈등에 함몰돼 있다가 6·25전쟁이 터졌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앞서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추가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선인 ‘애치슨 라인’을 설정할 때 한국을 제외했다. 북한의 김일성은 남한을 무력 공격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스탈린의 재가를 받아 남침했다. 무방비 상태였던 우리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급기야 낙동강 방어선만 무너지면 대한민국도 공산화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그때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트루먼을 찾아가 간곡하게 호소한다. “대통령님, 대한민국 안에는 예수 믿는 50만명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 나라를 구해 달라고 간절하게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데 포기하시겠습니까.”

이 한마디에 트루먼이 감동을 받아 당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을 소집하게 했다. 당시 상임이사국은 15개국이었는데 소련도 그중 하나였다. 상임이사 회의 중에 미국 대표가 “소련군이 왜 대구에 있어야 하냐”고 공격을 하니까 소련 대표가 무안해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 순간 14개 나라가 만장일치로 유엔군을 대한민국에 보내기로 결의한 것이다. 그래서 16개국이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렇다 해도 워낙 전세가 기울어져 있는 데다 중공군과 소련군이 합세해 공격해대니 낙동강 저지선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더글러스 맥아더라는 용장이 나타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이것이 반전의 분기점이 돼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맥아더 장군은 기도와 믿음으로 밀어붙여 대성공을 거뒀다. 아니, 하나님의 절대주권 섭리와 역사로 대한민국을 구원한 것이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인상할 것을 요구하며 미군 철수까지 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미 하원의 낸시 펠로시 의장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에 대해 너무 무리하게 요구한다며 주한미군 철수는 절대로 안 된다면서 반대했다. 트럼프 역시 펠로시 의장의 의견을 존중한다며 자신의 의견을 철회했다. 물론 그는 여전히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염려하는 시각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은 참으로 위험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의 정부가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한 면도 있다. 당연히 교회가 선지자적인 사명을 갖고 비판하고 주시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 시위도 하고 집회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한민국이 곧 망할 것처럼 극언을 쏟아내지는 말자. 비관적이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 희망을 선포하자. 이 시대와 정부를 비판하고 공격하더라도 대한민국 자체에 대해서는 희망을 노래하며 축복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 교회와 신자의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데 대한민국이 금방 사회주의화되고 북한에 점령되겠는가. 우리에게는 71년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역사가 있고 헌법이 있고 정신적 내공이 있지 않은가.

임시정부와 이승만정부의 기초는 기독교 정신이었다. 그래서 이 나라는 기독교 정신과 교회의 축복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첫 새벽 바다로 출항하는 배처럼, 푸른 희망의 뱃고동을 울리며 축복의 연가를 부르자. 우리가 그 역사를 지키며 축복하고 또 축복하자. 한국교회의 기도가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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