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학생들이 지난해 8월 23일 교내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고려대 입학과정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 학내 집회’를 열고 있다. 당시 집회는 서울에 있는 다른 4년제 대학들에서도 열렸다. 하지만 명문대 바깥에 자리한 청년들은 ‘조국 사태‘에 냉소를 드러내거나 시종일관 침묵하는 분위기였다. ‘세습 중산층 사회’의 저자는 이런 현상을 지적하면서 20대를 하나의 세대로 뭉뚱그려 규정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뉴시스

‘한국의 논점’은 국내 내로라하는 필자들이 새해에 한국사회가 마주할 난제들을 내다본 시리즈로 매년 연말 출간된다. 최근작인 ‘한국의 논점 2020’에서 제시된 키워드는 모두 36개였는데, 책에는 인상적인 이야기가 수두룩했다. 특히 눈길을 끈 챕터는 청년 불평등 문제를 다룬 글이었다. 필자는 1990년대생 문제를 세대론의 잣대로 분석하지 않았다. “(90년대생은) ‘세대’로 묶을 수 있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불평등 실태를 조명했고, 부모의 계층→자녀의 학벌→자녀의 고소득 일자리 취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글을 쓴 주인공은 서강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조귀동(39)씨였다. ‘세습 중산층 사회’는 조씨가 내놓은 첫 단독 저서다. ‘세습 중산층 사회’는 온갖 통계와 연구를 깁고 엮어서 청년 세대가 마주한 노동 시장의 살풍경과, 세습 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현실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90년대생의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을 분석한 그만그만한 책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책에 담긴 반짝이는 내용을 전부 소개할 순 없으니 뾰족한 이야기 4개만 골라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90년대생의 부모 세대인 60년대생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였던 시위 장면.

① 60년대생이 만든 세습 중산층

지금의 젊은 세대가 겪는 팍팍한 불평등의 실태를 파악하려면 부모 세대인 60년대생의 특징부터 알아야 한다. 60년대생이 작금의 대한민국 불평등 세습 구조를 만들어놓아서다. 이들은 이전 세대인 50년대생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60년대생이 대학에 진학한 80년대는 대졸자가 급증한 시기였다. 경제 호황으로 취업 시장에서는 대졸자 수요가 많았다. 대학만 졸업해도 대기업 입사가 수월했다.

97년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도 이들에겐 별문제가 아니었다. 구조조정의 칼날은 고참인 50년대생 차장이나 부장으로 향했다. 60년대생은 IMF 덕분에 공석이 된 차장과 부장 자리를 꿰찼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부동산으로 재미를 봤다. 물론 이것은 “학번이 있는” 60년대생 이야기다. 이전 세대까진 대학 졸업 여부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타가 아니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인생 역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60년대생부터는 달랐다. 대학을 나온 60년대생은 ‘소득+학력+인적 네트워크’를 모두 거머쥔 첫 번째 세대가 되었다. 이들은 소득과 학력과 네트워크로 구성된 “다중 격차”의 기득권을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회를 사재기하고 콘크리트 같은 유리 바닥을 만든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흙수저 청년이 금수저 친구를 이길 수 없는 사회가 돼버렸다. 바야흐로 ‘세습 중산층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② 단단해지는 학벌 세습의 고리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20대에게 ‘아버지 뭐 하시노’만 물어봐도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실제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치는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결정짓는 요소가 됐다. 명문대 진학에 필요한 관문 중 하나는 명문고 입학 여부인데, 소수의 고등학교가 명문대 입학을 독식하는 ‘명문고 시스템’은 갈수록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2015년 서울대 합격자를 살펴보자. 합격자의 44.9%는 이른바 명문고로 불리는 65개 고교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명문고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서울 강남에 집중돼 있다. 2012년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강남구 소재 고교에서는 졸업생 15%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진학했다. 강남구는 ①번에서 설명한 “학번이 있는 60년대생”이 많이 사는 곳이다. 문제는 이 같은 격차가 중학교 때부터 존재한다는 데 있다. 2011년 정부가 진행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결과에서 ‘보통 이상 학력’ 학생 비율이 90%가 넘는 서울 소재 중학교 25곳 가운데 17곳은 ‘강남 3구’의 학교였다.

지금의 30대가 대학에 진학할 때도 강남 명문고의 파워는 대단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대의 불평등이 30대의 그것과 다른 부분은 이렇듯 ‘좋은 대학’의 지위가 이전 세대보다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데 있다. 명문대 진학이 “번듯한 일자리”로 이어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③ 더 높아진 인생 역전의 장벽

“번듯한 일자리”의 기준을 월급 300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월급 300만원을 받는 20대 취업자는 전체의 10% 수준이다. 월 급여가 2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 명문중→명문고→명문대→대기업으로 이어지는 ②번의 현실이 자명하다면 패자부활전이라도 존재해야 한다.

한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04~2006년에는 중소기업 근로자 가운데 3.5%가 1년 뒤 대기업으로 이직했지만 2013~2015년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2.2%로 떨어졌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올라서는 비율은 같은 기간 10.8%에서 4.2%로 감소했다. 첫 일자리가 신분을 결정짓는 세상이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생은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알려졌다시피 이들의 부모인 60년대생은 베이비붐 세대였다. 80년대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반계 고교 졸업생은 연 40만명 수준이었는데, 2010년대 들어서는 그 숫자가 50만명을 넘어섰다. 2006~2009년 13만명 수준이던 미취업자는 2010년대 들어서는 18만~20만명을 넘나들고 있다. “미취업자가 20만명을 넘는 것은 2010년 같은 대규모 경기 침체 상황에서나 발생했던 일이다. 오늘날 20대가 느끼는 취업난은 이전 세대가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 겪었던 수준인 셈이다.”

④ 586세대 양보론은 희망사항?

‘세습 중산층 사회’에는 ①~③번 외에도 인상적인 이야기가 한가득 실려 있다. 예컨대 20대가 정치적으로 보수화됐다는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들려준다. 노동 시장의 변화를 통해 젠더 갈등의 이유를 분석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후반부로 접어들면 저자가 제시할 ‘세습 중산층 사회’를 결딴낼 방법에 관심이 쏠리는데, 일각에서는 젊은 세대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기성세대가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586 양보론’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586 양보론은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저자는 “다소 위악적으로 말하자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이렇게 적어두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50대인 그들에 대한 대규모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다. …실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노동 법규를 고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사회적 에너지 소모도 줄일 수 있다.”

물론 저런 주장이 저자가 제시하는 궁극적인 해법은 아니다. 핵심은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니라 의무와 공평이 아닐까”라는 문장으로 갈음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세습의 구조를 끊으려면 ‘기회의 평등’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교육 기회와 능력 배양의 기회에서 하위 90%도 상위 10% 수준의 기회를 갖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상위 10%와 아래 계층과의 격차를 “능력의 차이” 때문이라고 포장하는 일도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만약 ‘세습 중산층 사회’의 후속작이 나온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책에서 넌지시 내놨던 이 같은 해법들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이었으면 한다. 이렇듯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세습 중산층 사회’는 금주의 책으로 꼽을 만한 수작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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