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현대 50주년 기념전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전에는 상업화랑 최초로 선보인 작품이 다수 있어 대표주자로서의 힘을 보여준다. 왼쪽 위의 김관호 작 ‘해질녘’도 그중 하나다. 이 밖에 천경자 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 이응노 작 ‘거리 풍경-양색시’, 김환기 작 ‘항아리와 여인들’(오른쪽 위부터) 등 시대상을 보여주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나왔다. 그러나 왼쪽 아래 사진에서 보듯 일부 공간은 전시 구성에서 의도가 분명히 읽히지 않는 등 기획력의 한계가 보인다. 갤러리 현대 제공

땅거미가 지는 시간, 강변에서 목욕을 끝낸 두 여인의 뒤태가 아련하다. 한 명은 흰 수건을 여신의 옷자락처럼 늘어뜨리고 있고, 다른 이는 구부정하게 서서 젖은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서양의 신고전주의를 연상시키는 구도인데도 서구 여성에 비해 키가 작고 통통한 몸에서 동양 여인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 그림은 한국의 서양화가 1세대인 김관호의 ‘해질녘’(1916)이다. 그가 도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문부성이 주관하는 공모전인 ‘문부성 전람회’에 출품해 당당히 특선한 이 작품이 처음으로 국내 상업갤러리에 걸렸다.

갤러리 현대가 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한국 근현대 인물화-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전(3월 1일까지)에서다. ‘해질녘’을 비롯해 이 대학이 소장한 일제강점기 한국 유학생 자화상 5점 등 총 6점이 나왔다. 도쿄예술대학 측은 “한·일 관계가 냉각상태지만 문화적 교류는 이어져야 한다”며 한국 첫 상업화랑 대여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갤러리 현대가 갖는 위상과 공신력을 보여준다.

갤러리 현대는 박명자(77) 회장이 1970년 4월 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현대화랑’을 열면서 시작됐다. 45주년 때 추상화 전시를 열었던 갤러리 현대는 새로운 반세기를 여는 이번 전시에선 인물화 카드를 꺼냈다. 191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100여년에 걸친 한국 근현대미술의 성장과 발자취를 인물화라는 장르로 추적하고 한국 근현대사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미술평론가 최열 목수현 조은정씨 등을 자문위원으로 참여시키는 등 의욕을 보였다. 작품을 모으는 역량에서 상업갤러리 대표주자로서의 힘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전시 구성에선 상업갤러리로써 갖는 한계도 노정했다.

전시는 1910~50년대를 보여주는 구관의 전시가 더 밀도 있다. 목수현씨는 “초상화, 누드, 향토색, 리얼리즘의 네 가지 키워드로 풀었다”고 설명했다. 김관호의 누드의 경우 당시 매일신보는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도 “여인의 벌거벗은 그림”이라며 수상작 사진을 싣지 않았다. 그랬던 누드화는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가 등장해 누드화가 당선작의 한 경향을 차지하면서 30년대가 되면 보편화된다. 이번 전시에도 서진달의 ‘나부 입상’(1934) 등 여러 점이 나왔다. 이인성이 그린 ‘가을 어느 날’은 일제가 조선을 헐벗은 나라로 묘사하도록 유도한 이른바 ‘향토색’ 어린 그림의 대표적인 사례다.

신관에서는 한국전쟁 이후에서 현대까지의 작품들이 평면적으로 나열된 인상이 짙다. 디스플레이에서 작품과 작품 사이의 긴장감, 전체를 꿰는 주제의식은 잘 감지되지 않는다. 전쟁 이후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 1층은 시대의 정면이 아니라 뒷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1954) 속 가족들의 동작에선 신명이 느껴져 피난민 모습으론 읽히지 않는다. 김환기의 ‘항아리와 여인들’(1951) 역시 누드 혹은 원주민 차림의 여성이 너무도 동화적으로 그려져 전쟁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멀리 바닷가에 쳐진 삼각형의 군용 텐트만이 전쟁 상황임을 보여주지만 누구도 거기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응노가 폭격 맞은 도심을 그린 스케치가 있지만 이번 전시에선 ‘거리 풍경-양색시’(1946)를 선택했다. 당대 화가들이 현실을 도외시한 게 아니냐는 인상을 다분히 준다.

1980년대 민중미술 코너는 황재형의 ‘광부’, 이종구의 ‘활목할머니’, 김정헌의 ‘딸-혜림’ 등 서정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주로 나왔다. 그 시대를 더 치열하게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상업화랑 전시라서 배제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2층의 디스플레이는 혼란스럽다. 자화상과 풍속도 등이 맥락 없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황영성의 ‘겨울가족’(1985)과 이숙자의 ‘보리밭 누드’(1997)가 나란히 걸린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 가운데 여성을 주제로 한쪽에 모은 작품들에서는 응집력이 보인다. 그렇다면 1층의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은 장소가 외지더라도 2층으로 옮겨오는 것이 주제 면에서는 맞았다.

그냥 상업화랑의 전시라면 이것저것 모은 작품들에 적당한 해석을 붙이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러나 대표주자의 50주년 기획전이라면 기획성이 좀 더 돋보여야 했다. 사람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어떤 관점에서 모여진 작품인지 의도가 읽히지 않아 아쉽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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