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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대통령이 조국을 놓아줄 때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대통령과 참모들의 애틋한 동지애는 비난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검찰과 대립각 세우면 개혁 동력 떨어져
지금은 검찰개혁안이 제대로 정착되도록 힘을 쏟을 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놓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놓아달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유무죄를 떠나 고초를 충분히 겪었다는 말과 함께 나왔으니 ‘더이상 비난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읽힌다. 조 전 장관이 기소된 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그렇게 뒤지더니 겨우 그만큼 나왔다”는 말이 쏟아졌으니 문 대통령은 검찰의 과도한 수사가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는 의미도 담았을 것이다.

‘조국 수사’와 검찰 개혁은 서로 배치되는 개념일까. 물론 조 전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프레임 속에서는 그렇다. ‘검찰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조 전 장관을 털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계속 그의 손을 들어주니 칼끝을 청와대로 돌렸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인사와 직제 개편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 조직 이기주의에 빠진 검찰 수뇌부를 이번에도 제어하지 못한다면 무소불위 검찰권 견제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가 이 프레임의 골자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문 대통령도 마음의 빚이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 전 장관을 살리겠다는 구명운동이 갑자기 검찰 개혁의 외피를 둘렀다는 생각을 여전히 버릴 수 없다. 검찰이 새 법무부 장관 임명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고려해 유리한 입지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성급하게 정치의 영역에 진입했다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렇더라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조 전 장관에게 쏟아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자체가 부당했다는 말까지 수긍할 수는 없다. 이는 검찰이 숱한 고소고발을 정치적 판단에 따라 무시해야 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게다가 증거인멸을 검찰의 증거 조작에 대항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였다는 식의 궤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오히려 후세에 누군가는 2019년에 검찰이 권력 눈치보기에서 벗어나려는 중요한 시도를 했다고 평가할지 모른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는 여러 검찰 개혁 과제 중에서도 우선순위가 매우 높다. 그런 이유로 문 대통령도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게 더욱 엄정하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검찰이 청와대 선거개입 및 감찰무마 의혹 수사를 계속하는 중요한 명분이기도 하다.

검찰 개혁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충분히 논의된 주제다. 검찰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많은 사람이 무리한 수사, 자의적 기소, 정치·경제 권력에의 굴복, 시민 위에 군림하는 권위적 태도, 특권의식에 기반한 제식구 감싸기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검찰을 지켜보고 있다.

무소불위의 검찰권이라는 말은 ‘누구든 수사하고, 어떤 수사든 중단시킬 수 있다. 영장 청구를 독점하니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도 처벌할 수 있다. 구치소와 교도소를 관리감독하는 권한을 악용해 특정인의 형 집행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국가원수의 헌법적 권한인 사면에도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장 나쁜 점은 검찰이라는 조직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이런 권한을 주저없이 사용한다’라는 뜻이다. 이런 병폐를 없애기 위해 수많은 개혁안이 나왔다. 지난 20년 동안 거의 모든 개혁안의 효과와 부작용이 여러 곳에서 논의됐다. 오직 실행이라는 한 가지만 빠졌다. 이제 와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예상되는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법이 통과됐으니 실행하면 그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때문에 경찰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하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시민 입장에서 검찰공화국이나 경찰공화국이나 다를 게 없다.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검찰 개혁을 향한 문 대통령의 충정과 일관된 의지를 의심하지 않는다. 청와대 참모들의 조 전 장관에게 보내는 애틋한 동지애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청와대가 검찰과 대립각을 세울 때마다 검찰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현실만큼은 제대로 읽었으면 한다. 총선을 앞두고 지지자에게 박수받는 것 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지금은 국회에서 어렵게 통과된 검찰 개혁안이 제대로 정착되도록 힘을 쏟을 시간이다. 기존 관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항명이라고 비난하지 말고 어떻게 일하라고 기준을 제시했는지를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법원이 법에 따라 발부한 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대변인이 나서서 불법적 시도라고 발표하는 청와대를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지도 다시 고민할 일이다. 검찰은 국가 형벌권을 집행하는 정부기관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검사 수십명을 동원해 바닥까지 턴 무리한 수사라고 비난할 수는 있어도 청와대가 국가 형벌권 자체를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에 간곡히 요청하고 싶다. 이제 그만 조국을 놓아주면 좋겠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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