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세상만사

[세상만사] 공천 드라마

김나래 정치부 차장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공천 국면에 접어들었다. 총선 90일을 앞두고 온갖 판세 분석이 쏟아진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중요한 건 앞으로 각 당이 보여줄 ‘공천 드라마’다. 드라마의 평점이 총선 승패를 가를 것이다. 4년 전 새누리당 사례가 이 가설을 무엇보다 잘 입증한다. 선거 초반 180석까지 바라보던 새누리당은 개표 결과 122석, 한 석 차이로 제1당 지위까지 뺏기고 말았다. 그렇게 폭삭 망한 데는 친박(친박근혜)계의 막장 공천 드라마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천 학살’ ‘살생부’ ‘자객 공천’ 등의 용어가 암시하듯 공천 드라마의 장르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 칼을 쥔 공천관리위원장이 어느 장단에 맞춰 칼춤을 추느냐에 따라 후보자의 생사가 갈린다. 칼잡이들은 확실한 명분을 내세우고 때때로 예고도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늘 나온다.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나고, 살아야 할 사람이 죽을 때도 있다. 이럴 때면 꼭 블랙코미디의 한 대목을 보는 기분도 든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뜻밖의 합종연횡을 펼치며 발버둥 친다. 이 과정에서 온갖 협잡과 배신은 기본이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보는 사람들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아사리판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 이번엔 진짜 죽을 줄 알았는데, 변변한 방패막이 하나 없었는데도 기적같이 살아 돌아오는 이들이다. 그리고 어느 드라마나 반드시 반전의 순간이 등장한다. 앞에 나와 칼을 휘두르던 공관위원장이 진짜 주인공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보이지 않던 손의 정체가 드러나면 비로소 앞에서 이해되지 않던 몇몇 장면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지난 20년간 총선 때마다 각 당이 써 내려간 공천 드라마는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1대 총선도 아마 그럴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16일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공관위원장에 앉히며 공천 드라마의 주인공 섭외를 마쳤다. 보수 통합으로 늦어진 야당에 비해 더불어민주당은 한 박자 빠르게 섭외를 끝냈다. 공관위원장 원혜영 의원을 필두로 공관위원까지 주요 배역의 캐스팅을 끝낸 상태다. 여야 모두 원칙에 따라 질서 있는 공천을 장담하지만 벌써 곳곳에서 파국의 징조가 보인다. 이 공천 드라마의 장르 변경은 불가능한 것일까. 출연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단 쉽지 않아 보인다. 보수와 진보, 한국당과 민주당 등 겉으로 보이는 기준으로 나뉘지만 본질적으로 이들은 하나같이 불타는 권력의지를 갖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의 조율이 쉽지 않음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들려줬다. “선거에 나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을 말리기는 쉽지 않다. 출마하려는 사람의 욕망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것보다 더 크고 강렬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정치사회학자 이종영의 저서 ‘사랑에서 악으로’를 떠올렸다. 그는 책에서 사랑과 욕망의 관계를 통해 권력의 속성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는 “권력자에게 권력은 내가 타자를 지배할 수 있는 중요한 자라는 느낌의 향유를 통해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권력이 안겨다 주는 기쁨은 권력 그 자체를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획득해야 하는 목적으로 상승시켜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권력의 속성이란 참으로 오묘해서 아무리 타자에 대한 사랑이나 선한 의도로 출발한 사람이라 해도 그 중독성에서 헤어나오려면 부단한 투쟁이 요구된다. 저자는 자기만족 대신 타인에 대한 감수성과 나만 옳다는 도그마 대신 개방적인 지성을 그 투쟁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과 개방적 지성이라니. 그걸 갖춘 출연진을 찾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스스로 바꾸긴 더 어려울 테니 결국 드라마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지금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드라마의 결말이 바뀌는 시대 아니던가. 권력에 취한 좀비같이 자신의 명성과 권력 행사에 눈이 먼 출연자들은 가차 없이 중도 하차시키라고 해보면 어떨까. 제발 꼭 살려야 할 사람은 살리자고, 이제 그만 나와야 할 사람은 잘라내라고 드라마 제작진을 향해 줄기차게 이야기해보자. 공천 드라마가 막장으로 치닫는 걸 매번 이렇게 두고만 볼 순 없지 않은가.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