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차병원 남성의학연구팀 의료진이 정자의 형태를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모습.

직장인 이윤호(40·가명)씨는 결혼 후 2년간 정상적 부부관계를 가져왔지만 자연임신이 되지 않았다. 아내 먼저 난임 검사를 받았지만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간 정액검사 등이 거추장스럽고 마뜩잖아 상담을 꺼려했던 이씨도 결국 병원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음낭의 혈관이 늘어나 정액 배출이 어려운 ‘정계정맥류’ 진단을 받고는 머쓱해졌다.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어 몰랐지만 정계정맥류가 있으면 정자 수가 적어져서 임신 확률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씨는 간단히 정계정맥류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후 검사에서 수술 전보다 정자 수가 10배 넘게 늘어난 사실을 확인했고 자연임신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됐다.

이씨처럼 남성 쪽 원인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들이 적지 않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난임 진단 남성은 2014년 4만8992명에서 2018년 6만7270명으로 5년간 37.3% 늘었다. 여전히 난임 여성에 비해 숫자가 적지만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난임을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로 보지않고 남성들도 함께 원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진단 건수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10년여간 저출산 극복의 일환으로 이뤄진 정부의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이 여성 중심의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등), 산부인과 영역에 편중돼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저출산 시대, 남성난임 어떻게 극복하나’ 주제 정책토론회 장면.

지난 17일 국회에서 대한남성난임대책개발위원회 주최로 열린 ‘저출산 시대 남성난임, 어떻게 극복하나’ 주제 정책 토론회를 통해서다.

남성난임대책개발위 문두건(고려대 비뇨의학과 교수) 회장은 이 자리에서 “임신과 출산은 남녀 커플의 문제이며 난임의 50%는 남성 측 요인이므로 현 인구증가정책에 난임 남성 쪽 요인이 더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비뇨의학회 민승기(경찰병원 전문의) 보험이사는 “남성난임의 진단과 치료에 산부인과 뿐 아니라 비뇨의학과도 주도적으로 참여할 당위성이 있다”면서 “정관복원술, 부고환정관문합술, 정계정맥류절제술 등 일부 난임 관련 남성 수술인 경우 비용의 전액 국가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자가 정액채취료 신설 등 정액검사 수가(진료 서비스 대가) 확대, 남성 생식기 진찰료 혹은 고환크기 측정법 수가 신설도 필요하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난임은 피임하지 않고 정상 부부생활을 함에도 1년 안에 임신되지 않는 경우 해당되는데, 약 15%의 부부가 난임으로 간주된다. 전 대한생식의학회 회장인 서주태 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은 “난임 부부 중 33%가 남성에, 20%는 남녀 모두에 문제가 있다. 즉 난임의 약 50%는 남성 요인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혼인이 연간 30만건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 중 15%인 4만5000쌍 정도가 난임 부부로 볼수 있으며 남성 측 요인 50%를 따지면 연간 2만2500명의 남성이 임신이 안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셈이다.


남성난임은 정액 내에 정자가 있지만 정자의 개수나 질적 문제(운동성 혹은 모양 이상)가 있는 경우 초래된다. 비만, 흡연, 과도한 음주 등 나쁜 생활습관이나 만성질환에 의해 생기기도 하며 정계정맥류 같은 음낭 내 혈관 이상이 원인이다. 발기부전이나 사정장애, 내분비장애, 고환기능 문제 등도 가임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정계정맥류는 남성 난임 원인 1위로 약 30%를 차지한다. 고환에 연결된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음낭 안에서 꼬부라지고 뒤틀리는 질환이다. 정액의 질에 영향을 주며 정자의 운동성 및 모양에 직접적인 이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20대 초반에 많이 진단된다.

일부는 고환에서 통증이나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아 지나치기 십상이다. 30대에 임신이 안 돼서 병원을 찾았다가 정계 정맥류를 발견하는 일이 흔하다. 발병했지만 수년간 모르고 지내다 결혼 후 난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서 전 회장은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정계정맥류가 있는 남성의 경우 정액검사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여도 임신이 잘 되지 않거나 보조생식술 시행 시 임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면서 “정계정맥류는 수술로 교정 가능하며 수술 후 점진적으로 정액의 질이 호전돼 자연임신 확률도 45~60%까지 증가한다”고 말했다.

정액 내에 정자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무정자증도 있다. 고환에서 정자를 정상 생성하지만 정자가 지나는 길인 부고환이나 정관이 막힌 ‘폐쇄성무정자증’의 경우 막힌 원인을 찾아 수술해 주면 자연임신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환에서 정자를 아예 만들지 못하는 ‘비폐쇄성무정자증’은 입양을 고려하거나 비배우자의 정자를 이용해 체외수정 등으로 임신을 시도할 수 있다. 이 경우 공공정자은행 활성화를 통한 원활한 정자 공급이 필요하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