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설치, 선거법 일방처리, 검찰 인사, 부동산 거래허가제 주장 헌법가치 훼손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거나 진영 논리 따라 참·거짓 바꾸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


대한민국은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 국가다. 1987년 헌법안을 기초했던 김철수 교수에 의하면 입헌주의는 헌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국가 권력에 의해서 부당하게 침해당하지 않도록 국가 권력을 헌법에 구속하는 통치 원리다.

한마디로 입헌주의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권력의 자의적 남용을 막자는 이념이다. 이것은 존 로크의 제한 정부(limited government) 이념과 미국 헌법 창시자들의 절제된 권력에 대한 철학을 뿌리로 한다. 입헌주의에서 말하는 헌법은 문자로 주어진 법안 그 자체를 의미함과 동시에 헌법에 녹아 들어가 있는 정신과 관습(convention)을 중요한 준거로 삼는다. 모든 통치자는 헌법 정신에 비춰 늘 지나침이 없는지 헌법 정신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성찰하라는 것이 입헌주의에서 통치자들에게 부과된 신성한 의무다. 지난 정권에 대한 탄핵도 이 입헌주의의 위배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에 들어와 지난 정권보다 오히려 더 자주 헌법 정신 위배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들어 일어난 일들만 해도 모두 위헌 시비에 걸려 있다. 패스트트랙으로 강행 통과된 공수처법과 선거법부터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헌법이 유일하게 보장한 준사법기관인 검찰 외에 옥상옥을 만들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주는 것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또 경기 규칙인 선거법을 제1야당 동의 없이 통과시킨 것 자체가 민주주의와 공정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한다. 거기에 소수 야당에 특혜를 주기 위해 비례성에 맞지 않는 억지 연동형으로 다수 정당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 선거 원칙을 거스른다.

준사법기관의 수장인 검찰총장을 인사에서 패싱하고 조국 전 법부무 장관을 무혐의 처리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을 살아 있는 권력 수사의 요직에 앉힌 것도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네가 검사냐?’는 말이 나왔을까.

이 정부에서 부동산 거래허가제까지 운운하면서 집값을 때려잡겠다고 덤비는 것도 헌법 무시다. 이 정부 들어 18번째 대책인 12·16 조치는 서울 강남 등의 15억원 이상 집에 대해 아예 대출을 금지했다. 이것은 헌법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 할 수 있는 ‘차별 없는 평등한 자유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 현금을 많이 가진 사람은 15억원 이상의 집을 살 수 있고, 현금 없는 사람은 대출받을 수 없어 집을 못 사는 것은 현금 부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기에 평등권을 침해한다.

헌법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는 재산권과 분리될 수 없다. 토머스 제퍼슨의 말대로 재산권이 자유의 기초임을 모르는 사람은 자유를 모르는 것이다. 자신에게 귀속된 소유물 없이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도 없고 자유를 구가할 수도 없다. 그래서 헌법 23조는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천명하고, 37조 2항은 기본권 제한은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 하게 돼 있다. 왜 대출을 받아 15억원 이상의 집을 사려는 사람의 자유는 원천적으로 봉쇄돼야 할까. 고가의 주택을 사려는 사람은 범죄자인가.

게다가 이는 대출받아 주거 이전을 하려 했던 사람과 현금만 가진 구매자를 찾기 어려워진 주택 판매자의 거주 이전의 자유도 침해한다. 법률로 할 일을 행정명령으로 하는 것도 권력 남용에 해당한다. 소수라고 해서 편의적으로 막 대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이 가장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왜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이런 일들이 빈발할까. 이 정권 사람들은 헌법 정신을 내면화하고 있기는 한 걸까. 이들은 자유의 가치를 존중할 마음이 있을까. 자유를 가진 자들의 기득권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이들은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을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체제 정도로만 간주하는 것은 아닐까. 권력의 자기 제한적 사용과 권력의 섬세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지킬 의지가 있는 것일까. 공정을 입에 올리면서 진영 논리에 따라 참과 거짓이 바뀌는 위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기회의 다양성과 선택의 자유를 존중할 때만 공정이라는 가치도 더욱 빛이 난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대한민국은 헌법 정신을 중심으로 발전의 신화를 일군 나라다. 자유 민주 공화 공정의 가치들로 이뤄진 헌법 정신은 빛이 없는 구석창이 아니라 미래의 빛이 들어오는 큰 창이다. 혁신을 화두로 하는 인공지능혁명 시대의 미래 가치인 창조성(creativity)과 인간애(humanity)도 모두 이 헌법 가치 없이는 개화될 수 없다. 헌법 정신을 지키고 가꾸는 것이 미래 대한민국을 양지로 만들기 위해서도 필수다. 헌법 정신이 흔들리는 것은 곧 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입헌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면 결국 국가의 힘은 비대해지고 국민 각자의 삶은 국가에 예속된 존재가 되는 운명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 치열한 역사를 통해 가꾸어온 자유민주공화국이 ‘동물 농장’에 다가서는 것을 어떻게 두고 볼 수 있단 말인가.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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