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00년간 기아와 빈곤, 질병 등 인류의 핵심 문제 해결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다양한 기술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전혀 아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이 인류 생산력을 급증시킨 것 같지만 실은 생산현장의 효율성만 증대시켰고 전체 생산력 기여도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또는 1910년경 포드 등이 발명한 컨베이어벨트 기술과 대량생산이 생산력 급증의 전기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30, 40년 먼저 시작되었다.

인류 생산력이 수직 상승한 것은 19세기 후반인데 바로 현대적 기업들이 탄생한 시점이다. 기업사 연구의 거장인 챈들러 교수는 명저 ‘보이는 손’에서 19세기 중반까지의 경제활동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주장처럼 한 가지 기능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독립적 소생산자들 간 시장거래로 이루어졌으나 19세기 후반에 역사적 대변동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전까지 각기 다른 독립적 소생산자들이 담당하던 연구개발, 조달, 생산, 판매 등 다양한 기능들을 한 조직 내부로 통합하여 일사불란하게 관리하면서 다양한 사업분야들과 광범위한 시장을 대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현대적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이 새로운 형태의 조직은 효율성과 합리성, 환경적응력, 혁신성 등 모든 기준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기업에서 발명된 현대적 조직형태는 비영리 공공부문 등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급속히 확산되며 현대 사회와 전통 사회를 구분하는 핵심 기준이 되었다. 위대한 사회이론가 막스 베버는 현대란 다름 아닌 사회의 주요 영역들이 극도로 효율적인 현대적 조직에 의해 합리화된 시기라고 정의했는데 그 핵심은 물론 기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기업경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초이다.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끊임없는 외침과 내분, 식민지 침탈, 동족상잔의 전쟁, 가난과 기아 등으로 대다수 국민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세계사의 주변부였다. 이런 절대빈곤 상태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급성장한 핵심 동력은 기업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기업들이 큰 난관에 봉착하고 있어 안타까운데 시장경쟁 때문이 아니라 기업을 비도덕적 존재로 보는 왜곡된 사회정치적 시선 때문이다. 마치 우리 기업들이 부당 행위를 일삼는 암적 존재이고 선진 기업들과 비교해서 경쟁력과 도덕성이 낙후되어 있는 듯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데 전혀 사실이 아니며 정반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역량과 도덕성 양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급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분야는 기업뿐이다. 최근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정치 분야의 충격적 후진성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필자가 종사하는 대학도 그 행정과 연구,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선진 대학들과 차이가 크다. 인간 사회인 이상 100% 완벽할 수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우리 기업들의 역량과 도덕성은 우리 사회 다른 분야들이나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다. 설혹 문제가 있더라도 공칠과삼으로 봐야지 마치 기업 자체를 악한 존재인 양 공격하는 행태는 심각한 사실왜곡일 뿐 아니라 미성숙한 태도다.

특히 우리가 현재 당면한 심각한 문제들의 대부분은 기업 말고는 해결방법이 없다. 실업문제를 보더라도 최근 고용률이 높아졌다고 하나 대규모 재정투자로 공공근로에 동원된 60대 고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고 실제 경제활동의 핵심인 30, 40대의 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기축통화를 가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과도한 재정투자는 필연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 유일한 해결책은 기업들이 계속 성장해서 생산적 고용을 늘리는 것밖에 없다. 정부나 기업 모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국민의 삶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인류사 최고의 도구인 기업을 백안시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세다.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실상을 보면 기업이 단연 제일 낫다. 특히 자신들 눈의 들보는 안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지적하는 정치권에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한 구절을 말해주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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